<문화地圖>문학10."문학과 지성"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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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문과대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문학과 지성』(『문지』)창간호(70년 가을)를 발견했을 때 나는 국문과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그걸 집어들고 뒤적뒤적 했지만 결국 사지는 않았다.당시 나는 겉멋에 빠져 거창한 고전 독서계획을 세워 그리 스에서부터 훑어내려오는 중이었고, 이론 공부한다고 범문사와 범한서적을 들락거리며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던 일종의 정치적 미숙아였다.그래서 당대의 우리 문학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속에서 『문지』의 출현이 갖는 의미를 알아볼 안목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뒤 선배들의 인도에 의지해 한국현대사의 고통스러운 도정에 눈떠 특히 77년부터 『창작과 비평』(『창비』)과 인연을 맺으면서 나는 비로소 『문지』가 지향하는 바를 더욱 뚜렷이 감지하게 되었다.그런데 거기에는 늦깎이 특유의 정직성도 없지 않았지만 한편 김현선생이 한국고전을 너무나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에 대한 나의 직업적 반발도 한몫 했을 터이다.80년대 중반인가 김선생이 불문과 초청으로 인하대에 강연 왔다가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불쑥 나에게 『최형, 요새 문체가 달라졌더군』하고 던졌다.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이 양반이 내글도 읽는구나」.창작이든 평론이든 당대의 문학에 대한 이 광범한 편력은 김선생,아니 『문지』평론가들의 뛰어난 미덕이아닐 수 없다.오늘날 『 문지』가 누리는 문학적 권위는 선입관없이 작품에 바로 부딪쳐 좋은 문학을 찾아가려는 수고를 사양하지 않는 모험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지』와 그 후신인 『문학과 사회』(『문사』)동인들은,물론개인차는 있지만,그동안 한국 문단의 우이(牛耳)를 쥐어온 반공.순수문학에도 반대하지만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창비』계열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일종의 중도적 노선을 견지해 왔다고 할수 있다.나는 『문지』가 어렵게 쌓아온 독자적인 위치를 존중하지만그 동인적 성격이 때로 폐쇄적으로 비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지금 우리 문학은 커다란 재편기를 맞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진정으로 문학 다운 문학을 실천함으로써 문학의 위엄을 회복할 전문단적 각성이 절실한 터인데,일찍이 『문사』동인들이 주장했던 「길트기」를 위해 『문지』가 바깥 일에도 좀더개방적이길 바란다.진정한 문학적 실천을 위한 『 문지』와 『창비』의 고도의 협동과 연대가 착실히 진전될 때 문학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굳건한 토대의 하나가 마련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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