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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걷기’ 동해를 걷다 ① 걷자, 힘들지 않을 때까지

중앙일보

입력

intro> 한국의 해변 길, 동해 트레일을 구상하다

워크홀릭은 지난 5월 2l일 ‘산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지리산 트레일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산에만 그런 길이 있는 건 아니다. 바다를 끼고 걷는 걸음 역시 그렇게 깊고 또 특별할 수 있다. 그 특별함은 거의 절대적으로 문화사학자인 방외지사 신정일가 이끄는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 빚지고 있다. 회원들이 직접 트레일 코스를 개발해 답사를 다녀왔다.

신정일 씨의 말에 따르면 여행이나 답사도 유행이 있다. 어디가 좋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모두들 우르르 몰려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신정일 씨는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투가리(뚝배기) 쓰고 간다.’는 속담처럼 금강산이 좋다고 하면 그곳으로만 가고, 설악산이 좋다고 하면 설악산으로 몰려간다’며 유행을 좇아가는 대다수 여행객들에게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단지 유명세만으로 여행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오랜 세월 도보 순례자들의 영혼의 길이 되어 왔던 산티아고 순례길만 해도 그렇다. 요즘은 너무 많은 방문객들로 속죄와 명상의 길이 되어야 할 그곳이 오히려 번잡스럽고 복잡해지고 말았는데, 특히나 한국인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한다. 신정일 씨는 이런 현상을 두고 ‘외화낭비’로 일축했다. 영혼의 씻김과 구원을 기도하며 걸어야 할 길이 단순히 색다른 해외여행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의 걱정이고 경계였다.
도보 순례와 관련된 얘기들에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한 신정일 씨는 본격적으로 동해안 트레일 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린 한국의 트레일 코스를 개발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평소 다짐이었다.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종종 트레일 코스를 내놓고 있긴 하지만 깊은 연구 없이 단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라서 그것이 문화로 자리 잡기가 어려웠다는 게 신정일 씨의 판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트레일 코스를 기획하는 사람이 꼼꼼하게 길을 걷는 것!
신정일은 트레일의 개념에 충실한 기획을 구상했다. 우선 동해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연결시켜 그곳에 숨어 있는 역사와 신화, 영웅, 순교자들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계획을 오랫동안 생각해 두고 있었다. 사십 연 년 동안 전국을 방랑하며 열심히 걷고 또 공부한 덕에 지역에 숨어 있는 사연을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은 신정일 씨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는 한국의 장거리 도보답사 구간으로 동해 트레일이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부산해운대에서 두만강까지 이어지는 동해 트레일은 관동팔경과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설악, 금강, 두타산의 명산과 원산의 명사십리를 비롯한 천혜의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망망대해로 펼쳐지는 태평양이 함께하는 천하제일의 코스다. 신정일 씨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북한 까지 이어지는 바닷길도 연구하여 남북한이 공동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세계적인 관광 상품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트레일 코스 시작> 부산 해운대에서 경북 울진군 후포리까지
맨 처음 길을 나섰던 것은 올해 2월 23일이었다. 겨울이 물러갈 무렵 시작해 여름이 닥쳐올 때에 마무리한 셈이다.
동해 트레일 답사에 나선 회원은 인솔자 신정일 씨를 포함해 모두 15명이었다. 이들은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너머에 있는 해월헌에서 조촐한 고사를 지낸 뒤 ‘제대로’ 걷기에 나섰다. 답사 코스는 모두 4개로 나눴다. 첫 번째 코스는 9일 동안 걸었고, 이후 코스는 3일씩 3구간을 걸었다. 답사에 걸린 기간은 18일이었다. 해운대에서 출발해 마침내 통일전망대에 이르렀을 때 모두들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감회를 나누었다. 아직까지는 더 걸을 수 없지만, 함경북도 나진을 지나 두만강에 이르는 1,400km 거리를 도보코스로 완성하겠다는 장대한 포부도 나눠가졌다.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포항시 대보면 구만리

출발 3일째 이후부터 슬슬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거나 육체적 피로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 특별한 고생 축에 들지 못한다. 하지만 초행길이거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다면 이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이때 기운을 돋는 방법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구호를 외치는 것. 회원들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고 외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래도 2% 부족할 때는 신정일 대표가 나서서 김수영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엄살을 부추기는 피로가 제 아무리 파고들어도 ‘가자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라는 김수영 시인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포항시 대보면 구만리

포항시 동해면 발산리

호미곶 바닷가

호미곶 앞바다에는 특별한 설화가 있다. 1894년 5월, 개화파의 우두머리였던 김옥균의 왼팔을 이곳 바다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형적으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어서 역모의 기운을 풍긴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신정일과 함께 길을 걷다보면, 역사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포항을 지나 영덕으로 가는 길

포항의 거대한 포스코를 감싸고 있는 영일만을 지나 아름다운 강구항을 거치고 나니 영해의 대진항에 도착했다. 영덕대게의 본향인 대진항에서 포식을 한 다음에 후포에 이르면 비로소 첫 번째 코스가 일단락된다.
바닷길 따라 걷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코스 설명서만 보아도 개인적으로 도전해볼 수 있다. 트레일에 문외한이라면 홀로 도전하기보다는 <우리 땅 걷기> 카페를 통해 합동답사여행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http://cafe.daum.net/sankang

동해 트레일 첫 번 째 코스 - 부산 해운대에서 경북 울진군 후포리까지

1구간 : 해운대 출발 →부산 송정동 공수고개 → 부산 기장읍 서암 → 부산 기장읍 대변리 용궁사 → 학리 수협 →일광면 이천리 → 장읍읍 임량리

2구간 : 장읍읍 임량리 출발 → 효암리 이길 봉수대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대송리 송정 →울주군 온산읍 감양리 갈매기돌 →온산읍 대정리 →처용리 성진지오텍

3구간 : 처용리 성진지오텍 출발→ 울산 신항→ 울산 용잠동 관청말→ 방어동 곧오섬→ 일산동 일산 우체국→ 미포동 홍상도 →울산시 북구 당사동 하사정

4구간 : 울산시 북구 당사동 하사정 출발 → 구유동 장사오피스텔 →신명동 신명 →경북 경주시 양남면 진리→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포항시 장기면 동경수산→ 장기면 양포리

5구간 : 장기면 양포리 출발 →포항시 남구 영암리 →구룡포읍 모포리 영일 수산→구룡포읍 하정리 태끼→ 구룡포리 오염연구소 →구룡포읍 신동재 →대보면 호미곶

6구간 : 대보면 호미곶에서 일출 보면서 출발 →구만리 갑산날→ 대보면 발산리 여사 →입암면 선바위→ 영일만 동해중고 →동촌동 포스코 본사 →송도초교

7구간 : 송도초교 출발→ 울산시 환호동 이내리 →죽천리 지을리 선착장 →곡강리 송백농장→ 흥해읍 오도리 작도 →청하면 이가리 월포 수련관 →포항시 송라면 방석리

8구간 :포항시 송라면 방석리 출발 →송라면 지경리 궁전모텔 →원척리 원척 →경북 영덕군 남정면 삼사리 →영덕군 강구면 금진리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창포분교 →영덕읍 노물리

9구간 : 영덕읍 노물리 출발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영덕대게 탑 →영해읍 사진리 말발 →영해읍 대진리 대진해수욕장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해맞이 동산 →병곡면 금곡리 칠보산 청소년 수련원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객원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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