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마법의 세계로 통하는 책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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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피지 위에 성서를 베끼고 있는 중세의 필사자. 이들의 작은 실수가 훗날 엉뚱한 해석을 부르기도 했다.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마법의 도서관』(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에는 책에 관한 멋진 경구가 적혀 있다. “한 권의 책이란, 죽은 자를 깨워 다시 삶으로 불러내고 산 자에게는 영원한 삶을 선사하는 작은 기호들로 가득 찬 마법의 세계다.” 이 구절은 아마도 책의 존재론을 언표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듯하다. 위대한 책들의 저자들은 죽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죽어갈 것이다. 그래도 위대한 책들은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으로 불멸의 생애를 살아간다.

서양에서 책의 유래는 약 6000년의 역사를 갖는 문자의 역사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기원전 3000년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설형문자의 존재는 문자의 기원이면서 책의 발아지가 된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사에 혁명적인 전환의 계기였다. 적어도 100만년 이상 지속된 ‘역사 이전’의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책의 역사』(시공사)를 쓴 브뤼노 블라셀에 의하면, 문자에서 발원해 인간의 특권인 사고를 나타냈던 책의 존재는 ‘문자에서 텍스트로’의 이행 과정을 보여준다.

‘책(冊)’이라는 상형문자가 말해주듯, 책은 묶여야 그 예술적·상품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책꼴의 첫 형태는 두루마리였다. 나일강 유역의 파피루스를 이용한 책이나, 중국 최초의 책인 죽간(竹簡)이나 모두 두루마리 형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기원전 2∼4세기께에 서양의 책꼴은 기독교 전파와 양피지 사용으로 인해 코덱스, 즉 고자본(古字本) 형식으로 변한다.

이 책꼴은 중세 내내 유지되는데, 수도원의 필사 전용실인 스크립토리움은 수공업 시대 책의 역사를 주도한 열정의 공간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열린책들)은 중세 필경사들의 고된 작업에 대한 지적 복원이자 헌사인 셈이다. 단테의 『신곡』, 루터의 독일어 성경 출간은 중세적 질서를 뒤흔든 혁명적 사건이다. 우리의 경우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1377)이 구텐베르크 활자(1450년대)보다 앞섰지만 국제화하지는 못했다. 물론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국제적인 인증을 받았다.

계몽주의 이후 근대 문명과 근대 세계에서 책이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계몽’의 대명사인 볼테르는 “지금까지 세계는 책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말한다. 이 시기를 연구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길)은 금서(禁書)와 유럽 시민혁명의 관련성을 방대한 자료로 입증한 바 있다.

책의 역사는 곧 지배자의 검열을 부른다. 기원전 213년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 당시, 의약·복서(卜筮)·농업에 관한 책과 진나라 역사책 외에는 모두 불태워진다. 650년 사라센 군대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두루마기 장서 70만권을 물경 6개월 동안 욕탕의 땔감으로 사용했다. 저 1970년대 김지하의 『오적』과 같은 시도 필화사건을 부른 바 있었다. 어떠한 명분이든 활자로 된 글에 대해 검열을 하는 행위는 반달리즘이다.

한편 계몽기에 디드로 등이 편찬한 『백과전서』의 출간은 번역의 문제를 환기했다. 찰스 디킨스, 조너선 스위프트 등의 신문 연재소설이 등장하고, 본격적인 여론시장이 형성되면서 18세기에 저작권 개념이 등장한다. 이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제기된 후, 1777년 프랑스에서 작가의 저작권을 최초로 공식화하는 법안이 마련된다. 이런 일련의 사례는 마셜 맥루언 및 베네딕트 앤더슨에 의해 인쇄 자본주의(print-capitalism)의 주도적 역할에 의한 근대 민족국가 성립이라는 학설로 뒷받침된다.

책은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비쌌다. 1835년 영국에서 간행된 펭귄 시리즈는 책의 대중화를 꾀한 시도였다. 우리의 경우 근대 전환기를 맞아 음독에서 묵독으로 독서 패턴이 변한다.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는 일제하 독서대중의 형성과 교양도서의 의미를 탐사한 흥미 있는 책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책은 컴퓨터의 발명과 전자북의 출현이라는 획기적인 계기를 맞는다. 이남호(고려대) 교수는 ‘문자제국쇠망약사’라는 글에서 인터넷 시대 책의 운명에 관해 자못 비관론적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 인터넷은 묵직한 책의 지혜보다는 찰나적 정보성에 탐닉하도록 만드는 성향이 있다. 숙제 도우미와 같은 사이트의 범람은 독서를 통한 지혜의 발견과 문화의 전수 과정을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책의 날’ 또는 ‘독서입국’과 같은 구호를 내걸 필요조차 없는 시민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고영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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