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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의 역사 칼럼]19세기 앞두고 불륜 쏟아진 世紀末 조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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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양반집 부인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저 노는 여자[遊女]인 줄 알고 그랬습니다.”
“시아버지와 서고모(庶姑母)의 행악을 견딜 수 없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798년 4월, 19세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 어느 양반집 며느리가 장용위 병사(兵士)와 통간한 사건이 일어났다. 위는 그들 두 남녀의 공초(供招) 내용이다. 여자는 당시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정관채의 며느리로, 이른바 한다 하는 양반집 부인이었다. 본래 그녀의 남편은 정관채의 실자(實子)가 아니고 동생 정양채 집에서 양자로 온 아들이었다. 정양채 또한 한성부 서윤(庶尹)이었던 걸 보면 이 집안은 잘나가는 양반집임이 틀림없다. 이런 집안의 며느리가 장용위 병사와 시골 마을에서 간통하고는 내쳐 그 남자 집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일이 발각되자 이들은 장용영에 잡혀갔다. 남자는 해당 병영에서 곤장을 맞고 석방됐으나 여자는 제주도에 노비로 보내졌다. 장용위의 일반 병사는 신분이 대개 양인 이하다. 말하자면 대갓집 부인과 장용위 병사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었다. 게다가 여자는 불륜을 저지른 이유로 시집 식구가 한 못된 짓을 들었다. 시집살이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식이다.

이로부터 몇 달 전에는 평안병사(平安兵使)가 동생이 사랑한 기생[愛物]과 몰래 간통한 일이 있었다. 기생인데 무슨 간통이냐고 하겠지만, 이 기생과 동생의 관계는 단순하지가 않다. 머리를 올려 줬고 향후를 약속한 사이였다. 말하자면 수청기이자 거의 첩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형이 그만 그 기생에게 반해 서울로 데리고 와 버린 것이다. 형제간에 한 기생과 동시에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은 나름의 예법을 깨트리는 일이었다.

또 비슷한 시기 홍문관의 한 고위 관직자는 며느리와 간통했다. 그 아들은 정신적 파탄을 겪었고, 며느리의 친정 집안은 결딴이 났다. 당시 이 사건은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19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일어난 일련의 간통 사건들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사실 남녀 간의 간통은 동서고금에 늘 있는 일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고위 관직자들의 집에서, 그것도 신분이 서로 다른 남녀가, 혹은 동생의 첩을, 또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간통하는 일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조선의 윤리의식에 균열이 감지되는 징표인 셈이다.

동시대를 산 여성학자 강정일당(1772~1832)의 도덕성을 생각할 때 이 상황은 더 이해되지 않는다. 성리학이 제시하는 대로 살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또 이렇게 자기감정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동시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조선 19세기의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도덕성에 대한 집착이 강고해지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깨어져 나가고 있는. 이는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말기적 현상이다. 문제는 고착화와 균열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면서 다음 시대를 맞이하느냐이다. 조선은 그 조율에 성공하지 못했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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