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보균의 세상 탐사] 너무 심약한 ‘청와대 정정길 체제’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이명박 정권은 촛불에 혼쭐났다. 그 난리 통에 개혁 상품을 내팽개쳤다. 정권 브랜드를 잃어버렸다. 한반도 대운하 정책 포기는 잘했다고 치자. 반대 여론이 워낙 거셌다. 반면 공기업 개혁은 인기 만점이다. 그런데 개혁 전선에서 맥없이 후퇴했다.

공기업 탈선은 고질병이다. 부실 경영 탓에 엄청난 예산을 퍼주고 있다. 그 속엔 서민의 땀이 섞인 세금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연봉 최고, 복지 만점의 제 뱃속만 채운다. 이번에도 공금 횡령, 납품 비리, 매춘 관광이 들통 났다. 다수
국민은 분개한다. 공기업에 수술의 칼만 대면 박수 칠 마음은 굴뚝 같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어이없이 퇴각했다. 공기업 노조가 개혁 반대 촛불을 들까 자신감을 잃었다. 낙하산 인사를 하려니까 노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부처별로 알아서 자율 개혁하라며 후퇴했다. 수술 시늉만 하다 끝나게 됐다.

공기업 개혁은 매력 있는 정책 브랜드다. 촛불에 밀렸던 국정 상황을 공세로 역전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개혁은 고통과 반발을 수반한다. 그걸 돌파하면 정권 신뢰도가 단번에 높아진다는 게 소용돌이 한국 정치의 경험이다. 공기업 개혁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단단한 것도 없다. 국회도 거대 여당이다. 그런데도 국정 회복의 결정적 호재를 놓친 것이다.

촛불 공포는 전염병인가. 혁신·행복도시 프로그램을 뜯어고칠 듯한 기세도 꺾였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힘들게 됐다. 류우익 전 실장의 청와대 1기는 아마추어라지만 정책 브랜드 관리의 자존심과 충성은 있었다. 정정길 실장의 2기는 돋보이는 참모가 나타나지 않은 채 심약하고 충성도는 떨어진다. 이 대통령이 비서진에 내놓은 책이 윈스턴 처칠 평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은 리더십 덕목의 으뜸으로 용기를 꼽는다. 용기는 권력 성공의 핵심 요소다. 이 대통령은 전략 부재의 유약한 보고서를 올렸던 참모들을 질책해야 한다.

정책을 버리는 솜씨도 어설프다. 대운하 포기 과정을 살펴보자. 민심 다수가 잘했다고 한다. 충주·여주 등 대운하 쪽 상습 투기꾼들이 뒤통수 맞은 것도 고소해한다. 문제는 그게 핵심 이명박 브랜드였다는 점이다. 중단할 때도 그에 걸맞은 대통령 특별성명이 필요했다. 그걸 통해 대운하의 집념, 반대 여론으로 인한 고뇌, 중단 결심을 설명했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민심을 수용하는 소통과 결단의 리더십을 과시할 수 있었다. 리더십의 신뢰는 감동적 후퇴에서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대운하 중단을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 보고”라는 반성 회견문에 볼품없이 넣었다.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다짐은 회견문 뒤쪽 귀퉁이에 있었다. 감동이 일어날 리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했다.

정책은 권력의 성공 자산이다. 브랜드를 잃으면 후유증은 심각하다.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다. 지지자들로부터 “왜 대통령이 되었는가, 국정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의심을 받는다. 권력의 위기는 촛불 같은 소수의 반대 세력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다수 지지자의 집단 실망과 이탈이 위기의 진짜 요인이다.

청와대·여당 인사들은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남긴 뿌리·인맥을 걱정한다. 그 때문에 개혁이 힘들다고 난감해한다. 그렇게 따지면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척결은 불가능했다. 그때는 30년간 군사정권 출신들이 요직에 있었다. ‘좌파 뿌리…’ 언급은 용기 없는 참모들의 전략 없는 하소연이다.

이 대통령은 태릉선수촌에서 “메달을 못 따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국민이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국민은 최선을 다하는 정권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공기업 개혁 등 주요 정책을 소신 있게 밀고 가라는 것이다. 국민의 신뢰는 추진력과 일관성에서 쌓인다. 이 대통령은 학습효과가 빠르다. ‘용기 있는 실용’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실감했을 것이다.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중앙 SUNDAY]

▶ '메이드 인 코리아' 참치 메카 꿈꾸는 욕지도

▶ 나경원 "네티즌, 표현 자유를 욕설의 자유로 오해"

▶ 애완男 "24시간 주인女에 맞춰…月 100만원 용돈"

▶ 날아갈 뻔 한 靑지하 상황실 벙커 '뇌' 놔두고…

▶ [칼럼] 시아버지가 며느리 간통해 온 장안 떠들썩…

▶ 시나리오 없이 北에 농락당한 유명환 외교

▶ 미분양에 12조원 규모 대출 '시한폭탄' 째깍째깍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