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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男 "24시간 주인女에 맞춰…月 100만원 용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펫 신청합니다. 귀엽게 생겼고요. 주위에서 완전 애완남이라고 하더라고요. 키우면 딱이라고!! 010-XXX-XXXX 연락주세요.”

“24살 185/84 주인님 찾아요. 010-XXX-XXXX 문자/연락/ 꼭 주세요^^기달려요~ㅎ”
최근 20~30대 젊은 층 사이에 새로운 동거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미혼의 연상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연하 남성을 ‘펫(pet·애완동물)’처럼 데리고 사는 것. 이른바 ‘노예형 동거’다. 중앙SUNDAY가 이색 동거문화의 실태와 원인, 배경 등을 짚어봤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하루 24시간이 철저하게 주인님 스케줄에 맞춰져 있어요. 아침엔 주인님보다 30분 먼저 일어나야 해요.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출근하는 주인님을 배웅한 뒤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하지요. 그 다음엔 자유예요.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면서 주인님이 오길 기다려요. 가끔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지요. 주인님이 틈틈이 용돈을 주는데, 한 달에 100만원 꼴…”

부산에 사는 20세의 남성 A씨.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 중이다. 그가 한 인터넷 카페에 펫 신청 글을 올린 것은 지난 5월이었다. 9명의 여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난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도 있었고,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고는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었다. 이중 30대 초반 여성인 B씨와 부산역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주인에게 절대 복종한다 ▶주인 방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외출을 할 때에는 반드시 허락을 받는다 ▶껴안는 정도의 스킨십만 허용한다는 등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다음날 A씨는 가족에게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고 말한 뒤 B씨의 수원 집에 입주했다. 펫, 즉 애완남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29세의 여성 집에서 2년째 동거 중이라는 C씨(25)도 주인녀(女)에게 충성을 다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인녀가 일을 나간 동안 PC방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인녀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귀가하지 않으면 큰 일 납니다. 계약서에도 ‘주인이 퇴근하기 30분 전에는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거든요.”

이렇듯 펫 생활은 완전한 주종 관계로 이뤄진다. 그런데도 젊은 남성들은 왜 펫이 되길 원하는 것일까. 인터넷 카페에 펫 신청을 한 남성 20명에게 펫이 되려는 이유를 물었다. 신청 글에 적힌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통해서였다. “가족을 벗어나 이성과 동거를 해보고 싶다” “여자에게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페이(임금)가 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TV를 보고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졌다”는 것이었다. 중복으로 답변한 것을 포함해 17명에 달했다.

이들이 말하는 ‘TV’는 한 케이블방송의 리얼리티 동거 프로그램,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을 가리킨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을 등장시켜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동거 에피소드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각종 포털의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젊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지난 5월 ‘시즌 4’의 출연자 공개 모집에 22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4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 등 지상파 방송에 방영되는 ‘동거 오락’ 프로그램도 동거를 문화 키워드로 부각시키고 있다.

2003년 청춘 남녀의 동거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계기로 생기기 시작한 인터넷 동거 주선 사이트들이 덩달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애완남 주선 카페도 올해 10여 개가 생겼다. 가장 활발한 카페의 회원 수는 2400 여명에 이른다. 주로 20대 초반의 남성이 자신의 나이와 키, 몸무게, 외모 등 신상 정보를 올린다. 이들 모두가 동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펫 지원자들은 대개 2명 안팎의 여성에게서 연락을 받지만, 실제로 동거에 들어가는 경우는 취재 대상 20명 가운데 3명. 동거를 원하는 여성 중에는 속칭 ‘골드 미스’가 많다. 탄탄한 직업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신 생활을 즐기는 싱글 여성들이 새로운 트렌드의 주인공이다. 의류 사업을 한다는 27세 여성은 “혼자 사는 게 심심해서 펫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펫의 조건은 “성실하고 말 잘 듣고 청소 잘하는 사람”이다. 여성들이 카페에 띄운 요구 조건을 보면 “퇴근하면 안마해줘야 한다” “애완견을 돌봐야 한다” “절대 말을 하면 안 된다” 등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다.

문제는 펫 동거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성 매매로 이어질 수 있다. “펫을 키우고 있다”는 26세의 한 여성은 “펫을 고를 때 성적 스타일을 고려한다. 처음 계약을 맺을 땐 성관계를 갖지 않기로 했으나 자연스럽게 관계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 펫 신청자는 성관계를 포함해 주인녀가 요구하는 것은 뭐든 다해야 하는 ‘백지계약’을 제의 받기도 했다. 서울여대 김미라(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이성 간의 만남을 하나의 게임이나 거래처럼 묘사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범람이 이성 관계에 대한 가벼운 태도와 무책임한 의사 결정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보윤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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