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북한과 일본의 속마음 읽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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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16면

요즘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는데 북한과 일본 때문에 더 열 받는다고 하는 이가 많다. 이런 때일수록 면밀하게 상대방 심리를 잘 읽어 ‘손에 피 안 묻히고 승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싶다. 북한과 일본은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전체주의적인 정서를 버리지 않은 국가라는 점에선 비슷하다. 북한은 소위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에게, 일본은 일왕에게 대를 이어 충성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본능에 충실한 것이 자랑이고, 돈으로 성공을 가늠하고, 소비에 목숨 걸며, 집단보다 개인을 더 챙기는 것이 현대화·서구화라고 생각하는, 적지 않은 한국인과는 확실히 다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일본 직원들은 부모 역할을 하는 모(母)회사나 중앙정부에 연락해 그 지시에 철저하게 따르고, 북한은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가르침’을 끝까지 기다려 한국인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화법도 그렇다. 북한은 금방이라도 뭔 일을 낼 것처럼 과격한 표현을 쓰고, 일본은 절대로 화낼 일 없을 듯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양쪽 다 겉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북한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자신들의 체제를 옹호하며, 헐벗고 굶주리더라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냥하게 대답하지만 상대방 말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잘 듣고 있다는 표시일 뿐이다.

차이점도 물론 많다. 북한은 다른 산업을 포기하고 핵무기라도 만들어 자국을 보호하고자 하는 미련한 선택을 했고, 일본은 맘대로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는 없으나 경제대국이 되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옳고 그름을 떠나 누구들처럼 겉멋 들어 설렁설렁 어설픈 서양 흉내나 내는 대신 옹골진 ‘애국심’을 확실하게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다. 서양의 선진국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점점 더 빈궁해지고 있는 북한과 달리 일본은 부유한 서양 사람들을 제대로 벤치마킹해 그들에게 맞추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서양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돈도 벌고 세련되어졌다. 북한이 이념 과잉으로 망해 가는 동안 일본은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익을 챙겨 온 것이다. 강자를 만나면 북한 정부는 대책 없이 악을 쓰며 머리채를 잡아 제 구덩이를 파는 것도 불사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무라이 스타일로 두말없이 항복해 제 먹을 것을 챙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들의 심리 행태를 거꾸로 이해해 북한에는 강성 이미지를, 일본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 것 같다.

예리하게 관찰하고 현명하게 처신하면 갈등이 있어도 국운이 오히려 흥할 수 있다. 북한의 총격이 우발적인 것인지, 남한 사회의 분열과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독도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일본의 본심이 동해와 대륙붕에 대한 욕심이라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탁월한 정치적 혜안을 지닌 이들이 앞장서서 상황을 정리해야 할 터인데 정작 필요한 이들은 강호산인(江湖散人)이 되어 ‘수상한’ 세월에 대한 냉소나 보내고 있고, 줄 잘 선 무능력자들이 알맹이 없이 소음만 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는 사이 이웃들이 우리를 깔보고 장난치다 더 큰 사고나 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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