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10만리>19.인도 수라스트란 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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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태국 동북부 지방 탐사를 마친 탐사팀은 발길을 인도로 돌렸다.
필자는 인도를 우리 조상들의 한 갈래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시체재한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그래서 인도에는 아직도 세계 어느 지역보다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인도남부에 살고 있는 드라비다족의 말은 우리말과 비슷한 것이 아주많다.문장 순서도 같고,토씨가 있는 것도 그렇고,또 기초 어휘도 무려 1천여개 이상이 같거나 유사하다.그 가운데서 기초 어휘 몇개의 예를 들어보면 우리 나라 말 가요(go),와요(come),나,너는 드라비다말로 자요,와요,나,니다.
인도 수도 뉴델리에 내린 탐사팀은 넓은 인도 땅에서 먼저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사전에 치밀한 계획없이 무작정 인도를 찾아온 것을 후회하면서 어디로 갈까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장정용(강릉대 국문과)교수의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르 는 생각이 있었나보다.
『HLA-B-59를 찾아갑시다.』 HLA-B-59는 한국.라후족.일본.중국 신장(新彊)위구르.인도 서북부 수라스트란반도,그리고 미국 서북부 백인 혼혈족의 유전자에서만 나타나는 조직적합성항원(組織的合成抗原).
***우리 선조들 일시체류 추정 탐사팀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갖고 우리 민족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도서북부 파키스탄과의 접경 지역 수라스트란반도로 향했다.
뉴델리를 떠난 탐사팀은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인도 두번째 도시 봄베이에 도착했다.공항을 빠져나온 필자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아무리 둘러봐도 저자가 6년전 와서 본 봄베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깨끗한 현대식 청사에다 거지떼들도 보이지 않았다.시내 풍경도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생겼다.봄베이에서 비행기로 다시 북서쪽으로 40분 날아 수라스트란반도 초입에 있는 바도다라시에 찾아갔는데 이럴수가.보이는 것은 모두 평범한 인도 풍물뿐.모처럼 모험해가며 찾아온 탐사팀은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 다.
『뭔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같아.』 『HLA-B-59가 맞지도 않네.』 탐사대원들은 저마다 불평을 쏟아냈다.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당황한 탐사팀은 다음날 바도다라시 대학을 찾아갔다.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학교도 휴일,박물관도 휴일.게다가 그다음은 주말 휴일이었다.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갈걸….』 그러나 후회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
드디어 3일이 지나갔다.
결국 그날 낮12시가 다 돼서야 탐사팀은 박물관장을 만나게 된다.탐사팀이 구자라트주에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자 50대 박물관장의 안색이 환해진다.
『그렇지요.옛날부터 수라스트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태국.베트남을 거쳐 한국이나 일본으로 많이 흘러갔으니까요.』 『옛!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고 말고요.이곳에서는 다 아는사실인걸요.』 탐사팀은 모처럼 쾌재를 불렀다.어쩌면 메콩강 탐사에서 발견한 그 많은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기묘한 일들이 그 다음날부터 벌어졌다.마술에라도 걸렸다 깨어난 것일까.지난 며칠동안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안보이던 우리 문화의 자취가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게 뭘까.』 「러더」 「버터레」 큰길가에 즐비하게 걸려있는 간판마다 씌어있는 글자들.한국 사람이면 60%이상은 읽을 수 있는 낯익은 글자들이다.신기하게도 구자라트주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한글이 있었던 것이다.물론 뜻과 발음은 비슷하지 않았다.
그러나 글자 모양은 틀림없이 우리 한글과 닮아 있으니 어찌된일일까. 탐사팀은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이 고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MS대학을 찾아갔다.그곳에는 지금으로부터 2천3백여년전아쇼카대왕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자의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차트로 작성해 두고 있었다.그 가운데서 우리 한글 자모와 같은 모양의 글자를 찾아보았다.
「ㄴㄷㅌㅇ?ㅁㅂㄹㅓㅗㅣ」.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다시 인도에서 유명하다는 산스크리트어 학자를 찾아 갔다.70세가 넘어보이는 굵은 뿔테 안경의 노학자가 읽는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국민학교때 배운 한글과 너무도 닮아있다.
「꺼커거…,쪄쳐져…,떠터더…,뻐퍼버…,셔허…」.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의 알파벳은 우리 한글처럼 ㄱ으로부터 시작해 ㅎ으로 끝난다고 했다.더욱이 산스크리트어는 음성까지도 어쩌면 우리나라 한글과 닮은 것일까.
노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어 알파벳 발음은 입과 목구멍의 모양에 따라 구분된다고 한다.즉「커」처럼 목구멍에서 나는소리,「처」처럼 입 천장에서 나는 소리,「뻐」처럼 입술에서 나는 소리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서낭당 곁 돌무더기도 보여 우리나라에서 수천 ㎞나 떨어져 있는 이곳 인도의 노학자에게 한글 음운에 대한 설명을 듣게되다니 정말로 믿어지지 않았다.
탐사팀의 관심을 모은 것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한글 글자꼴을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옛 기록이다.
성종때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용齋叢話)』에 따르면「…初終聲 八字,初聲 八字,中聲 十二字,其字體依梵字爲之…(초종성8자,초성 8자,중성 12자의 글자 모양은 인도 산스크리트어 글자를 본으로 했다)」고 적고 있다.
새삼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이 큰 빛으로 다가온다.우리의 정음을 세종대왕이 최초로 만들었음이다.비록 글자 몇개의 모양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차용해왔을 망정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그것을 우리 민족의 소리 빛깔에 맞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다음날 오전5시 기상,드디어 수라스트란 농촌을 향해 떠나는 대장정이 시작됐다.바도다라 시가지를 벗어나려는데 누군가 입에서감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과하마(果下馬)다!』 『삼국지』위지 동이전(東夷傳) 예(濊)편에는 이 과하마의 키가 겨우 3자밖에 안돼 과일나무 밑으로도 타고 다닐 수 있어 과하마라고 부른다고 기록해놓고 있다.
***인 도 여인 하나가 50여마리의 과하마를 몰고 농촌을 향해 난 길을 가고 있다.과하마의 키는 약90㎝가 될까말까 하다.이곳은 파키스탄과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이란.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건너온 과하마가 흔하게 눈에 띄었다.
탐사팀은 그날 종일토록 수라스트란 농촌을 돌아다니며 옛날 우리나라 시골 여인들처럼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도,서낭당 곁에쌓아놓은 돌무더기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탐사팀의 발길이 멈춰선다.바로 조그만 다리를 지날 때였다.다리 밑에서 구자라트 여인들이 모여 빨래를 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인들은 큰돌 위에다 빨랫감을 얹어 놓고 주무르기도 하고,이따금씩 방망이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바로 우리나라 풍경 그대로였다.바로 우리 할머니.어머니들이 냇가에서 빨래할 때의 정겨운모습.그러나 취재에 문제가 있었다.빨래하는 아주 머니들이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였다.할 수없이 멀찍이 숨어 도둑처럼 몇장을 찍었는데,나중에 현상해보니필자의 사진 솜씨가 신통치 않아 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은 딱한장밖에 나오지않았다.
『역시 피는 못속이는구나.』 『HLA-B-59는 진짜였어.』모두들 한마디씩 하며,아무리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시속 60㎞도 안나가는 인도산 차를 그날따라 짜증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글.사진=김병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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