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일본반도체업계 위기 고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연말연시 메모리칩 시세의 급락은 일본 대형 반도체 회사들엔 더 큰 재앙의 전조(前兆)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반도체기술이 미국보다 떨어진다.아날로그 가전에서 디지털컴퓨터 단계로 막 이행하고 있는 터여서 미국업체들에 국내시장을상당부분 잠식당하고 있다.해외에서는 한국.대만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의 반도체협정 효력 만료시한도 넉달밖에 남지 않아 시장개방 압력은 다시 한번 고조될 전망이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일본 메모리칩 업계의 경영환경은 순탄했다.수익률은 사상최고에 육박했다.
작년 내내 각 업체의 증산계획 발표가 쉴 새 없이 나왔다.특히 94년까지만 해도 이 분야에서 치욕적 손실을 거듭했던 NEC.후지쓰등은 수억달러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반도체 환경은 왜 곤두박질했는가.원인은 간단하다.개인용컴퓨터(PC)에서 콤팩트디스크(CD)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가전제품에 흔히 쓰이는 범용 메모리칩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다.NEC.도시바.히타치.후지쓰.미쓰비 시등 일본 반도체 「빅5」의 매출 가운데 3분의1이 메모리칩이었다.
더 큰 문제는 메모리분야 중에서도 절대비중을 점하는 4메가D램 메모리칩 가격이 급락하는데도 대체품을 신속히 내놓지 못하고있다는 점이다.작년 성탄절 시즌의 PC 판매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4메가D램칩 가격은 작년 11월 11~1 3달러에서 최근 8달러까지 떨어졌다.3년간 반도체 특수(特需)를 떠나 보낸업계의 현주소다.이런 불황이 한시적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여전히 오름세를 타고 있는 16메D램이 업계의 희망이다.하지만 이 역시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듯 싶다.NEC 고위간부는『현재 42달러 정도인 16메가D램칩 값이 연말께 30달러까지떨어질 것 같다』고 말한다.
일본언론이 만들어낸 「97년 반도체 위기설」은 실제로 업계 전문가들의 가슴을 옥죄고 있다.
대만의 경우 무려 8개 업체가 97~98년중 대규모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이미 메모리칩 세계정상을 차지한 삼성전자 역시 공격적 증산에 나서고 있다.내년께 메모리칩 폭락사태가 벌어지지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첨단기술에 대한 일본정부의 배려가 다시금 두드러진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70년대 유아기였던 일본 반도체가 정부주도로 도약했듯이 차차(次次)세대를 내다본 1억달러짜리 초첨단전자기술 개발사업이 민관합동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발족한 일본반도체 10개사의 공동연구 프로젝트도 첨단기술 콤플렉스를 벗어 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