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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창출 도운 사람 대우해 주는 건 불가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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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지난달 13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겨냥한 정두언 의원 등 당내 소장파들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당은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달았다. 청와대에 안경률 의원(60·3선)이 불려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 의원에게 “일부 의원의 묻지마 식 인식공격이 우려스럽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통령의 노기(怒氣)는 안 의원에 의해 여의도에 곧바로 전해졌고, 이날 밤 정 의원은 “대통령의 정국 수습을 돕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맡은 그는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과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따르는 우직한 ‘특무상사’형 정치인이다. 그런 안 의원이 의석 수가 최대 182석에 달할 수 있는 거대 여당의 안살림을 총괄하게 됐다. 그를 18일 만나 당 운영 청사진과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최근 총선 낙선·낙천자들에 대한 낙하산 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역사가 이전의 (잘못된)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얘기 같은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권 창출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건 정당 민주주의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더 중요한 건 전문성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전보다 전문성을 더 따져서 인사를 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임명된 안택수 전 의원이나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 내정설이 도는 정형근 전 의원도 전문성이 있다고 볼 수 있나.
“안 전 의원은 국회 재경위원장을 했다. 금융회사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전문성을 쌓았다. 정 전 의원도 정보통으로만 알려졌는데 보건복지위원을 4년이나 해서 업무를 잘 안다.(그는 다른 케이스도 대부분 해명이 가능하다며 추가 거명을 요구했다)

-그렇다 해도 선거 직후 청와대가 천명한 ‘낙선·낙천자 6개월 공직 금지’ 방침을 뒤집는 건 문제 아닌가.
“그건 우리 스스로 자중하자는 의미의 내부 규율이었지 강제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선거 직후 지원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나 공기업에 가려면 적어도 반 년은 기다리는 게 좋겠다, 좀 자제하자는 취지였지 규율이나 법은 아니다.”

-지난달 정두언 의원 등 당내 소장파에 대한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쇠고기 문제가 커져 가는 시점이었는데 대통령과 독대하며 당내 여론을 전했다. 두 가지 건의를 드렸다. 쇠고기 문제는 재협상에 버금가는 조치가 있어야 하고, 인적 쇄신은 대폭이어야 국민들이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정두언 의원에 대한) 발언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폭적인 인적 쇄신은 이뤄지지 않았다.
“내각이야 그렇지만 청와대 비서진은 대폭 바꾸지 않았나. 대통령실장을 경질한 것은 자기 몸만 놔두고 수족을 자른 것이다.”

-대통령이 어떤 얘기를 하던가.
“내 생각과 같은 말을 대통령이 하더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로 대한민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는 바람에 수단에 소홀했고, 졸속으로 (쇠고기 협상을) 진행했다. 고소영·강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인정하더라. 내 생각에는 인수위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영어 몰입교육이니 뭐니 해서 말이 많았지 않은가. 이번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나타난 중·고생들은 영어정책 때문에 현 정부에 반감을 가진 측면이 있다고 본다.”

-개헌 논의를 빨리 시작하자는 의견이 많다.
“지금 나라 상황이 안팎으로 어렵다. 경제 문제가 가장 어렵고 북한 문제, 독도 문제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런 문제들이 정상 궤도에 진입한 뒤 내년이나 내후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유가·물가 문제로 서민 고통이 이렇게 심한데 내각제 하자, 대통령 중임제 하자며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희태 대표가 당·청 일체론을 주장했는데.
“참여정부 시절 어설픈 당·청 분리 때문에 국정 운영이 실패했다는 의미에서 박 대표가 그런 얘기를 했고, 대통령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당헌·당규를 고치나.
“현재 규정도 당·정 분리는 아니고 대선 후보가 되면 당직을 가질 수 없다고만 돼 있다. 하지만 현재 규정은 과거 야당 시절 만든 것인 만큼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강재섭 대표 때 실무진이 만든 안이 있다. 당·정·청이 잘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전당대회 때는 박희태 후보를 지지하는 100인 회동을 주선하는 등 캠프의 핵심으로 활약했는데.
“이명박 후보를 도왔던 의원들이 초기에 밀어줄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관망했다. 당시는 정몽준 의원이 앞서고 박 대표는 뒤처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 대표가 당을 이끄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YS 최측근인 최형우 전 장관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는데.
“자영업을 하다가 1984년 민추협에 들어갔다. 그때 민추협은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가 50 대 50으로 반분하던 조직이었다. 민추협 노동부국장으로 시작했는데 그때 최형우 선배를 만났다. 최 선배는 늘 당당했고 후배들도 많이 챙겼다. 함께 고생도 많이 했다.”

-최 전 장관이 한때 대선캠프까지 꾸리고 외부인사도 영입하다가 쓰러졌는데 진짜 대권에 생각이 있었나.
“글쎄…. (쓰러지지 않았다면) 도전했을 수도 있지만 양보했을 수도 있다. 그분은 꼭 자기가 한다는 생각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는 집권당 사무총장 자리도 미련 없이 던질 정도로 화끈했다.”

-재산이 왜 그렇게 적나(그의 재산 신고액은 1억 4600만원으로 18대 지역구 의원 중 끝에서 여섯째다).
“13, 14대 총선과 15대 보궐선거까지 세 번 낙선했다.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에 몇 번이나 올라갔을 정도로 힘들었다. 15대 보선 때는 선거가 끝나고 선거 운동원 일당 처리해 주려고 서울 구기동 집까지 팔아먹었다. 애들 학교 보내기도 어려워 아내가 월부 책 장사를 했다. 그때 얘기 하면 눈물이 난다.”

-대표적인 이재오계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라. 이재오계다, 이상득계다 자꾸 말하지 말고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하는 데 노력했던 친MB계라고 말하는 게 맞다.”

-이재오 의원은 언제 돌아오나.
“가끔씩 전화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 세미나에 참석하고 자전거 타고 포토맥 강 누비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상황이 맞아야 들어오지 않겠나.”

윤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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