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가계, 느는 건 빚과 이자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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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 주식투자 빚으로 고생했던 중견기업 회사원 김정호(41)씨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이너스통장 사용만은 자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요즘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김씨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기껏해야 100만원이 넘지 않았다. 그러나 올 들어 대출이 야금야금 늘더니 현재 800만원으로 불어났다. 각종 물가가 오르는 데다 2년 전 받아둔 주택담보대출(1억원)의 이자부담까지 커지면서다.

김씨는 “350여만원의 월급(실수령액 기준)으로 이자 내고, 초등학생 두 아이 교육시키면 생활비에 구멍이 난다”며 “급하면 펀드라도 해약해야겠지만 주가가 너무 빠져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물가 급등과 그에 따른 금리 상승으로 서민 가계의 주름살이 깊게 파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나빠 벌이는 시원찮은데 돈 쓸 데는 많아지면서 은행 예금·적금을 해지하거나 고금리를 물고서라도 급전을 빌리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이후 증가폭이 둔화되던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증가액은 4월 1조원에서 6월엔 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한은 자금시장부 관계자는 “2월을 정점으로 줄어들던 대출 증가세는 물가가 급등하면서 5월부터 다시 큰 폭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에 넣어 둔 예금·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민은행의 예금·적금 담보대출 잔액은 6월 말 현재 2조7311억원으로 전달보다 460억원 늘었다. 5월 증가액(29억원)에 비하면 신규 대출이 6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4월에 196억원이 줄었던 신한은행의 예금·적금 담보대출도 ^5월 78억원 ^6월 190억원 ^7월(16일까지) 48억원씩 늘었다.

기존 저축을 담보로 한 대출도 한계에 부닥친 이들은 아예 통장을 헐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예·적금 중도해약 건수가 올해 상반기 54만9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0건가량 늘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주식시장이 침체해 있는데도 예금·적금 해약이 느는 것은 생활자금 마련이나 기존 대출을 상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이 급속히 부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강종만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금리 상승 추세가 계속되면 가계대출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에서 연체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득에 비해 빚이 많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강 연구위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48.1%로 미국(139.3%)이나 일본(116.6%)보다 높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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