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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경주가 보여 준 인간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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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승 못지않은 3위였다. 엊그제 새벽(한국 시간) 막을 내린 2004 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역대 아시아 선수로는 가장 좋은 성적인 3위를 기록한 최경주 선수의 활약은 전 세계 스포츠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질 만했다. 이번 쾌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인의 자긍심을 되살렸던 박세리 선수의 미국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메이저대회 우승에 비견할 만한 값진 일이다. AP통신 등 외신들도 崔선수의 멋진 플레이를 장문(長文)의 기사로 소개하며 "그린 재킷(마스터스 우승자가 입는 옷)을 입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날 상위권 선수들의 성적을 기록한 리더보드 상단에 자리잡은 K J Choi라는 이름은 崔선수가 어느새 세계 골프계의 중심에 우뚝 자리잡았음을 실감케 했다. 한국보다 골프장이 열배 이상 많은 일본의 프로골퍼들도 쉽게 넘지 못하고 있는 미국 PGA(프로골프협회)의 장벽을 崔선수가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崔선수의 오늘은 성실과 집념의 결과다. 2000년 崔선수가 PGA 투어에 막 진출했을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崔선수가 플로리다주의 한 한국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 것을 본 동포들과 식당주인이 그를 대접하겠다고 청했다. 그러자 崔선수는 "대회 중이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 대회가 끝나고 뵙겠다"며 겸손하게 사양했다. 그의 집중력과 근성, 성실한 마음가짐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어렵게 자란 崔선수가 PGA에서도 손꼽히는 연습벌레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노력과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마음자세가 PGA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2승을 거두고 4년 만에 마스터스 3위라는 대성과를 일궈낸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최경주라는 스타의 탄생은 '대한민국'이란 국가 브랜드의 이미지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십억, 수백억원을 들인 홍보보다도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더 높인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崔선수가 PGA에서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는 선수로 자리잡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