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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꽃은 ‘욕망의 화신’ 생명을 향한 거친 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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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퀸이 진득하게 붙잡고 있는 주제는 생명이다. 그는 피로 만든 자소상 ‘셀프’(1991)에서 출발, 갓난 아들 루카스의 태반으로 아들의 두상을 만들어 얼린 ‘루카스’(2001) 등의 강렬한 작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영국의 국민 영웅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서 있는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구족화가 앨리슨 레퍼의 동상(2006)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꽃을 그린 대형 극사실회화(‘나일강 범람’) 10여 점과 벽에 붙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해골(‘환영에 대한 명상’), 모델 케이트 모스가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조각(‘끝없는 기둥’) 등 20여 점의 신작을 가져왔다.

꽃 그림이라 해서 한가로울 거라 여기면 오산이다.

있는 대로 봉오리를 벌리고 있는 원색의 꽃들은 크고, 야하고, 독하다. 퀸은 이 잡아먹을 듯한 이미지들에 대해 “모든 생명체는 종족 번식의 욕망을 갖고 있다. 꽃은 이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계절별로 달리 봉오리를 터뜨렸던 꽃들을 한 날, 한 시에 살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꽃조차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그는 같은 날 구입한 여러 종류의 꽃들을 정성스레 늘어놓고 사진 찍은 뒤 여러 달에 걸쳐 그렸다. 그가 그려낸 계절 없는 화면 속의 꽃들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속옷 차림의 케이트 모스가 요가하고 있는 조각상은 그의 전작 ‘임신한 앨리슨 레퍼’와 연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완벽한 몸매의 모델이나 두 팔 없이 태어난 장애인이나 육신에 영혼을 가두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도, 똑같이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벽에 나사로 고정시켜 떠 있는 듯 보이는 해골 조각상인 ‘환영에 대한 명상’이나 ‘사느냐 죽느냐’ 역시 육신의 문제에 매달린 결과다.

마크 퀸은 “해골로 끝날 건가 명상에서 뭔가 얻을 건가 묻는다면, 삶은 명상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특이하고 엽기적인 듯하지만 그는 결국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다룬다.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02-720-1020. 

권근영 기자

데뷔작 ‘셀프’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나도 그런 자화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굳이 피까지 뽑아야 했을까. 그는 “순수한 삶의 결정체로부터 나오는 재료로 삶을 나타내고 싶었다. 작품에 사용된 4L의 피는 내 몸에 현재 돌고 있는 피의 양과 같다. 많은 피를 사용함으로써 내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1991년 이후 5년에 한 점씩 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 때마다 두 달에 한 번씩 의사를 찾아가 570ml씩 피를 뽑아 모은다. 지금까지 네 점을 만들었는데 이 중 한 점은 거물 컬렉터 찰스 사치가, 또 한 점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김창일 대표가 소장하고 있다. 항상 냉동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사치가 전기선을 뽑아 작품이 녹아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작가는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셀프’ 연작이 모두 건재함을 강조했다.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는 “냉장고나 전기선이라는 작품 외적 요소가 작품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중독에 대한 은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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