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多문화 포용한 加·호주 공연예술 메카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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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캐나다와 호주는 선망의 대상이다.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 무공해의 자연환경 등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한참 떨어져 있어 친연(親緣) 관계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18세기 유럽인들에 의해 성립된 신생국이요, 최근엔 정치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신흥 강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어떨까. 필자는 재작년(캐나다)과 올해(호주) 두 나라의 문화예술, 특히 공연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행운을 누렸다. 주요 도시에 산재한 공연단체와 기관을 방문해 리더들을 만나고 그들이 만든 '쇼케이스(주요 장면 모음)'를 보는 기회였다.

이 여정에서 두 나라 공연예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두 가지로 요약하면, 대담한 실험정신과 다문화적인 포용력에 대한 이해였다. 실험정신은 '모든 짓거리'를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열린 태도다.

일례로 올 2월 호주 애들레이드 '아츠 마켓(각 단체들이 부스를 설치해 프로그램을 전시하는 예술품 시장)'에서 본 공연 가운데 '더 랩(The Lab, 실험실)'이 있다. 흰색 가운을 입은 두 사내가 실험실 집기들을 이용해 별난 소리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였다. 저게 무슨 예술이냐 싶었지만, 관객들은 기발한 발상에 박장대소했다.

다문화적인 포용력은 두 나라 예술 정체성의 근간이었다. 캐나다, 특히 독립 움직임이 있는 퀘벡주 몬트리올의 경우 영어권과 불어권의 '세력균형' 속에서 싹튼 상대주의적인 예술관은 동서양 혹은 다민족적인 요소의 융화를 가능케 했다. '태양 서커스' 등 최근 이 지역의 전략적인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서커스는 그런 다문화적 포용력의 결과물이다. 호주는 시청각적인 애보리진(호주 원주민)의 유산을 현대예술의 기본 요소로 수용해 독자성을 살렸다.

주류적인 리더들이 서구적 혈통이지만, 최근 '탈유럽' '탈미국'을 지향하며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고자 두 나라가 역점을 두는 분야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예술'이다. 빈약한 역사적 배경에 집착하는 대신 당대(當代)의 정서와 문화를 자원화해 세계 예술계에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야망이다. 그 수단으로 멀티미디어의 혼융이 두드러진다.

마침 두 나라의 이런 예술 경향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캐나다산 4D 홀로그램 연극인 '아니마'(22~25일, LG아트센터)와 호주의 전위적인 현대무용단 '청키 무브'의 '크럼플드(Crumpled)'와 '커럽티드(Corrupted)'(24~25일,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이다. 미국.유럽에 경도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면서 신흥 컨템퍼러리 예술 강국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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