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정능력 상실해 버린 서울시 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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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시의회 김귀환 의장이 임기 첫날 돈선거 혐의로 긴급 체포된 사건은 우리나라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지방의회 제도가 도입되고 17년이 지났건만 후진성은 여전하다. 실질적인 정치발전을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해준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타락상을 시의회 스스로 개선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시의회 의원, 특히 106석 가운데 100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가 그들의 한계를 말해준다. 이들 가운데 30명이 직접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귀환 후보가 금품살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상황에서도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를 강행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실제로 김 후보를 찍었다. 그간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온 각종 집단이기주의적 입법행위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해법은 문제의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서울시 의원들이 이처럼 공인답지 못한 처신을 거듭해온 까닭은 분명하다. 그들은 유권자보다 소속 정당,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을 먼저 생각한다. 정당의 공천 여부에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 지역구 96곳을 독식한 기현상이 그 증거다. 국회의원들은 훌륭한 인물보다 자신의 측근을 공천했다. 물론 이 같은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오만이 가능했던 배경은 유권자들의 ‘묻지마 투표’ 행태다.

해법은 분명하다. 정당, 특히 한나라당이 먼저 나서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에 침묵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공천 잘못을 고백하고 제도 개선을 다짐해야 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부패·무능한 후보를 철저히 배제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선거법도 미리 바꿔야 한다. 광역의회 비례대표를 늘리고 기초의회 정당공천제도 재검토해야 한다.

결국은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에 반성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지방의회의 파행을 감시하고, 궁극적으로 신중한 투표로 이들을 심판할 당사자가 바로 유권자 자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