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금강산 안전 방치한 현대와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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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과 관련, 현대아산의 안전불감증이 계속 드러나고 있어 충격적이다. 부실한 출입금지 펜스 등에 이어 ‘사고 발생 시 현장과 본사 간의 보고체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박씨 사건 발생 지점에서 지난해 김모 목사가 북한군에 억류됐던 사건이 본사에 보고도 안 된 채 유야무야된 것은 말도 안 된다. 현대가 이 사건에 좀 더 유의해 접근금지 안내문이라도 제대로 부착했더라면 박씨의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은 정·경분리 차원에서 현대의 주도로 1998년 화려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3년 후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자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당시 김대중(DJ) 정부는 세금으로 충당되는 남북협력기금에서 900억원을 현대에 지원해 주었다. 비록 정부의 무리수였지만, 현대로선 국민에게 단단히 신세를 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관광객들에 대한 만전의 서비스는 물론 안전문제에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박씨 사건을 계기로 드러나고 있는 관광 실상을 보면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지역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는 ‘북한 땅’이라는 긴장감이 현대에는 결여됐다. 펜스도 그야말로 엉성하게 설치하고, 김 목사 사건 같은 중대한 사안도 무심하게 넘긴 것이 이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동안 ‘관광객의 안전보다는 돈벌이에 더 급급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현대는 냉철하게 자성해야 한다.

현 정부를 포함해 DJ·노무현 정부도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전 정부들은 금강산 관광이 갖는 ‘남북화해’의 측면에만 너무 몰입해 안전사고 발생 시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남북 당국 간의 대응책 마련에는 소홀했다. 현 정부도 아직은 ‘적성국’인 북한 땅에 수많은 국민이 다녀오는데도 그들의 안전에 대해선 수수방관했다. 그러니 사고가 나도 현대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생명을 더 이상 민간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정부의 근원적인 대책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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