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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박씨 일행, 사고 전날에도 그 길 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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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점 ① 경고판이 왜 해안가에 없었나

피격 사건을 목격한 이인복씨는 “펜스가 끝나는 부근에는 높이 1.5m 정도의 모래언덕이 있었고 백사장과 바다 경계 부분에는 아무런 차단시설이 없었다”고 전했다. 숨진 박왕자씨와 동행한 친구들도 “일행 중 다른 한 명도 사고 전날에 바로 그 길을 산책했다. 경고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금지 구역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펜스는 군사 경계용 철조망이 아니라 일반 주택용 펜스여서 출입금지 구역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 관계자는 “펜스가 크게 설치돼 멀리서도 눈에 띈다. 다만 썰물이 되면 펜스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 부분에 땅이 (펜스 없이) 그대로 드러나 이곳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아산 측이 13일 공개한 현장 사진을 보면 펜스는 썰물 때가 아니더라도 해안에서 32m 떨어져 있어 아무 때나 관광객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보도 블록 산책로가 아니라 일반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펜스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또 경고판은 펜스가 끝나는 모래언덕 부분이 아니라 펜스 한가운데 산책로 주위에만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해안을 따라 걷는 관광객들은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통일부의 김호년 대변인은 13일 언론 브리핑에서 “1년 전 현장 주변 사진을 봐도 펜스가 모자란다”고 말해 오래전부터 펜스가 뚫려 있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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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점 ② 안전교육 제대로 했나

관광객들 중에는 “펜스 바깥쪽이 금지 구역이니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경고를 현대아산 측으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 그렇게 위험한 곳인지 몰랐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 병사의 과잉 대응 총격은 별도로 치고, 관광객 사전 안전교육이 부실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12일 방북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우선 (행동수칙을 담은) 관광안내책자를 사전에 관광객들에게 전달한다. 중간중간에 안내교관이 사진촬영 금지 구역과 제한 구역 등 기타 행동수칙을 안내한다. 관광객들이 지켜야 할 규칙은 반드시 숙지시켜 왔다”고 반박했다. 또 현대아산의 다른 관계자도 “버스에 동승하는 안내조장(현대아산 직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관광객들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안전수칙을 거듭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 의문점 ③ 왜 위험에 무감각했나

금강산 비치호텔 주변의 관광특구는 관광객이 24시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불과 1.1㎞ 떨어진 곳에 펜스가 설치돼 있다. 평소에도 관광객들이 무심코 경계를 넘어가 제지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평소에도 관광객들이 무심코 경계를 넘거나 초소 쪽 풍경사진을 찍어 북한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부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때는 북한 군인들이 달려와 관광객에게 경고하고 사진기를 빼앗아 사진을 지운 뒤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관광객들이 출입금지 구역을 손쉽게 넘나드는 상황이었는데 현대아산 측은 일부 관광객의 실수나 객기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펜스를 넘는 걸 엄격히 막아 이들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또 펜스 너머 1.2㎞ 떨어진 곳에 북한군 무장 초소가 있었지만 관광객들의 동선을 파악할 폐쇄회로TV(CCTV) 등이 없었다. 호텔 출입문에만 CCTV가 있어 이곳을 벗어나면 관광객들의 인근 행적을 파악할 도리가 없었다. 현대아산 측은 “CCTV 설치 같은 전반적인 안전 쇄신 문제를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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