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3명, 쓰러진 사람 흔들어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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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하는 두 발의 총성과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금강산 해변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피살된 관광객 박왕자(53·여)씨가 쓰러진 상황을 목격했다는 이인복(23·경북대 사학과 2년·사진)씨의 증언이다. 그는 12일 대구평화통일시민연대 사무실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2008 금강산 대학생 생명평화캠프’ 참석차 현지에 머물다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 사고 전날부터 관광통제선(펜스) 근처 해변 야영장 텐트에서 밤을 새웠다고 한다. 펜스 남쪽으로 150m, 해변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 혼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피격)현장에서 사람이 총을 맞고 숨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북한 주민끼리의 문제로 알았다”며 “우리 관광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 직전의 상황은.

“11일 새벽 동이 트기 직전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금강산 해수욕장 백사장에 앉아 있었다. 이때 검정색 상하의를 입고 흰색 머플러처럼 생긴 천을 머리에 두른 50대 아주머니가 해변가를 걸어 펜스가 있는 쪽으로 갔다.”

-숨진 박씨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

“아주머니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펜스 너머 북쪽이 통행 금지된 곳이거나 북한군 초소가 있는지 잘 몰라 큰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해변 뒤쪽 산책로에서 관광객 4∼5명이 산책하는 등 펜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다녀 대수롭지 않게 봤다.”

-피격 직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주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북쪽 기생바위 주변 마을에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안내방송을 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총성이 들렸다.”

-총소리를 직접 들었나.

“펜스 너머 북쪽 해안 산 쪽에서 ‘탕’ 하는 총소리가 났고, 5∼10초쯤 지나 다시 ‘탕’ 하는 소리가 났다. ‘악’ 하는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아주머니(박씨)가 내가 앉아 있던 곳을 지나가고 한참 있다가 총소리가 났다. ”

-피격 현장을 목격했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펜스의 해안 끝 부분으로 다가갔다. 바닷가 부근에는 펜스 대신 길이 6m, 높이 1.5m 정도의 모래 언덕이 있고, 백사장과 바다의 경계 부분에는 차단 시설이 없었다. 모래 언덕 위에 올라서자 북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는 여성이 보였다. 이어 북한 군인 세 명이 여성이 쓰러진 곳의 북서 방향 산 쪽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군인들은 엎드려 있는 여성을 손으로 흔들어 깨우는 등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

-이후 벌어진 일들은.

“북한 군인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펜스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듣거나 안내판·경고판 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군이 있어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고 모래 언덕 위에서만 지켜봤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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