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요일 <5> 야구 매니어 박광원 엠넷미디어 대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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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27면

운동엔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박광원 대표는 CEO에 취임하자마자 사내 야구단을 만들었다. 그가 야구단 일원으로 타석에 들어선 모습.

박광원(41·사진) 엠넷미디어 대표는 야구라면 신물이 난다는 사람이다. 사연이 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박 대표가 입사한 곳이 보스턴에 있는 WABU-TV 방송국이었다. 스포츠 프로그램 PD를 맡았는데, 마침 보스턴은 프로야구단 레드삭스가 유명한 도시. 그는 WABU에서 2년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레드삭스 경기 중계를 맡았다.
“같은 날 연속해서 두 경기를 치르는 더블헤더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10시간 내내 스튜디오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식사도, 생리 현상도 그 안에서 해결하면서 카메라 스무 대를 돌렸다. 야구 하면 으레 공포심부터 느껴질 정도였다.”

“그라운드 설 때마다 마음속엔 랑데부 홈런”

이런 박 대표에게 ‘야구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2006년 8월 엠넷미디어 대표를 맡으면서다. 엠넷미디어는 CJ그룹 계열 엔터테인먼트 회사. 음악 전문방송 ‘Mnet’ 채널로 유명한 방송사업부와 더불어 음악·포털·공연·콘텐트 등 5개 사업부가 ‘엠넷’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

박 대표는 “사업 분야도 다양하지만 GM기획·좋은콘서트·CJ뮤직 등을 흡수하면서 회사 규모가 커졌다. 600여 명의 임직원을 하나로 모아주는 구심점이 필요해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그는 지난해 초 사내 야구단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이름도 ‘엠넷 슈퍼스타즈’라고 직접 지었다. 프로야구 원년 꼴찌팀에서 이듬해 장명부 투수를 영입해 리그 2위로 도약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용광로 같은 도전정신을 잇자는 뜻이란다. 엠넷 슈퍼스타즈에는 박 대표를 비롯해 4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주로 경기도 남양주·분당에 모여 주말마다 연습을 하고 월 두세 차례 외부 팀과 경기를 치른다. 박 대표는 통산 전적을 묻는 질문에 “아직은 신생팀이라는 것을 이해해 달라. 승리는 두 번, 패배는 두 자릿수”라며 멋쩍게 웃었다.

박 대표가 그렇게 지긋지긋했다던 야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웃으면서)간단하다. 뭐니뭐니 해도 야구가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다. ‘화면’으로라도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않았나. 또 한 가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유독 야구팀이 많다는 것이다. 연예인·매니저들과 교류하는 데 야구가 한몫 단단히 한다. 스튜디오에서 느끼지 못한 쾌감을 만끽하고 있다. 하루 10시간 TV 중계하다 직접 그라운드를 누비니까 10시간도 문제 없을 것 같다.”

박 대표는 키 1m82㎝, 몸무게 77㎏의 ‘준수한 몸매’를 자랑한다. 개인 성적이 궁금하다고 묻자 “이래 봬도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다. 경기를 보는 눈썰미는 있다”며 즉답을 꺼린다. 팀에서 좌익수로 5번이나 6번 타자를 맡는 그의 평균 타율은 2할5푼대란다. 박 대표는 “야구팀을 만들고 나서 그라운드에서는 아니어도 마음속으로 랑데부 홈런을 날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야구는 철저한 팀플레이다. 4번 타자 한 명이 뛰어나다고 해서 팀이 승리하는 게 아니다. 엠넷은 ‘음악’이라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베테랑들이 모인 드림팀이다. 엠넷은 음악방송 분야에서 브랜드파워 1위고, 음악사업부는 음원 사업 시장에서 점유율 43%로 부동의 1위다. 문제는 이를 조합하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1등을 달린다고 무조건 엔터테인먼트 업계 1위가 예약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박 대표는 “초호화 군단이지만 명성만큼 우승 경력을 갖추지 못한 뉴욕양키스 팀 사례가 자주 인용되지 않느냐”며 “좋은 팀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백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야구장)의 성적표는 선수 실력도 중요하지만 벤치와 스태프들이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선수-스태프 간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고 각 선수 간 협력도 중요하다. 엠넷 식구들은 이제 눈빛만 봐도 이해하는 사이가 돼 가고 있다. 승리 수만 더 쌓는다면 엠넷 슈퍼스타즈는 실제로 랑데부 홈런을 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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