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원(41·사진) 엠넷미디어 대표는 야구라면 신물이 난다는 사람이다. 사연이 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박 대표가 입사한 곳이 보스턴에 있는 WABU-TV 방송국이었다. 스포츠 프로그램 PD를 맡았는데, 마침 보스턴은 프로야구단 레드삭스가 유명한 도시. 그는 WABU에서 2년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레드삭스 경기 중계를 맡았다.
“같은 날 연속해서 두 경기를 치르는 더블헤더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10시간 내내 스튜디오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식사도, 생리 현상도 그 안에서 해결하면서 카메라 스무 대를 돌렸다. 야구 하면 으레 공포심부터 느껴질 정도였다.”
“그라운드 설 때마다 마음속엔 랑데부 홈런”
이런 박 대표에게 ‘야구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2006년 8월 엠넷미디어 대표를 맡으면서다. 엠넷미디어는 CJ그룹 계열 엔터테인먼트 회사. 음악 전문방송 ‘Mnet’ 채널로 유명한 방송사업부와 더불어 음악·포털·공연·콘텐트 등 5개 사업부가 ‘엠넷’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
박 대표는 “사업 분야도 다양하지만 GM기획·좋은콘서트·CJ뮤직 등을 흡수하면서 회사 규모가 커졌다. 600여 명의 임직원을 하나로 모아주는 구심점이 필요해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그는 지난해 초 사내 야구단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이름도 ‘엠넷 슈퍼스타즈’라고 직접 지었다. 프로야구 원년 꼴찌팀에서 이듬해 장명부 투수를 영입해 리그 2위로 도약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용광로 같은 도전정신을 잇자는 뜻이란다. 엠넷 슈퍼스타즈에는 박 대표를 비롯해 4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주로 경기도 남양주·분당에 모여 주말마다 연습을 하고 월 두세 차례 외부 팀과 경기를 치른다. 박 대표는 통산 전적을 묻는 질문에 “아직은 신생팀이라는 것을 이해해 달라. 승리는 두 번, 패배는 두 자릿수”라며 멋쩍게 웃었다.
박 대표가 그렇게 지긋지긋했다던 야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웃으면서)간단하다. 뭐니뭐니 해도 야구가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다. ‘화면’으로라도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않았나. 또 한 가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유독 야구팀이 많다는 것이다. 연예인·매니저들과 교류하는 데 야구가 한몫 단단히 한다. 스튜디오에서 느끼지 못한 쾌감을 만끽하고 있다. 하루 10시간 TV 중계하다 직접 그라운드를 누비니까 10시간도 문제 없을 것 같다.”
박 대표는 키 1m82㎝, 몸무게 77㎏의 ‘준수한 몸매’를 자랑한다. 개인 성적이 궁금하다고 묻자 “이래 봬도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다. 경기를 보는 눈썰미는 있다”며 즉답을 꺼린다. 팀에서 좌익수로 5번이나 6번 타자를 맡는 그의 평균 타율은 2할5푼대란다. 박 대표는 “야구팀을 만들고 나서 그라운드에서는 아니어도 마음속으로 랑데부 홈런을 날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야구는 철저한 팀플레이다. 4번 타자 한 명이 뛰어나다고 해서 팀이 승리하는 게 아니다. 엠넷은 ‘음악’이라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베테랑들이 모인 드림팀이다. 엠넷은 음악방송 분야에서 브랜드파워 1위고, 음악사업부는 음원 사업 시장에서 점유율 43%로 부동의 1위다. 문제는 이를 조합하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1등을 달린다고 무조건 엔터테인먼트 업계 1위가 예약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박 대표는 “초호화 군단이지만 명성만큼 우승 경력을 갖추지 못한 뉴욕양키스 팀 사례가 자주 인용되지 않느냐”며 “좋은 팀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백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야구장)의 성적표는 선수 실력도 중요하지만 벤치와 스태프들이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선수-스태프 간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고 각 선수 간 협력도 중요하다. 엠넷 식구들은 이제 눈빛만 봐도 이해하는 사이가 돼 가고 있다. 승리 수만 더 쌓는다면 엠넷 슈퍼스타즈는 실제로 랑데부 홈런을 날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