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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D-2] 기발한 선거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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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엄격해진 선거법 때문에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지게를 지고 거리에 나선 후보(사진위)와 인기 드라마 ‘대장금’ 복장을 한 선거운동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광삼.김태성 기자]/td>

지난 9일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 노인정에서는 예정에 없던 대청소가 실시됐다.

40대 여성 두명이 찾아와 오전 내내 노인정 화장실은 물론 창틀의 먼지까지 말끔히 닦아낸 것이다. 청소를 끝낸 이들은 영문을 몰라 하는 주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드시면 ○○○ 후보를 밀어달라"고 호소했다.

충남 아산에서는 최근 각 면을 옮겨 다니며 각설이 타령을 하는 40대 남성 두명이 이목을 끌고 있다. 남루한 옷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한바탕 타령을 풀어 놓는 이들은 다름 아닌 모 후보를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다. 그냥 지지만 부탁해선 안 되고 주민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해야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이 같은 홍보 전략을 낳았다고 한다.

17대 총선이 엄격해진 선거법에 따라 치러지면서 각 지역에선 돈 대신 몸으로 때우는 운동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사람을 동원할 수 없으니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기발한 홍보전도 전개되고 있다.

서울 성동갑에 출마한 한나라당 김태기 후보는 황소 모형을 유세차 위에 올려 놓고 황소 울음 소리를 틀어 놓는다. "황소처럼 열심히 일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성동을에 출마한 같은 당 김동성 후보는 정장을 벗어던지고 아예 유도복을 입고 다닌다. 등에는 "썩은 정치 메친다"는 문구를 적었다.

서울 종로에 출마하는 민주노동당 이선희 후보 측은 '판갈이춤'을 선보였다. 선거운동원 두명가량이 앞치마와 두건을 쓰고 손에는 고기를 구울 때 쓰는 철판 등을 든 채 "이번엔 판을 갈아치우자"고 외친다.

이 지역에 출마하는 민주당 정흥진 후보는 거리 연설 때면 '눈이 내리네''새타령' 등 노래를 한 곡 부른다. "구청장 출신의 후보가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이채롭지 않겠느냐"는 게 캠프 관계자의 말이다. 뮤지컬 배우 출신인 자민련 곽민경(여.서울 동대문을)후보는 심지어 지역방송이 주관한 합동 대담 프로그램에서 특기인 노래를 부른 뒤 자신을 소개해 다른 후보들을 놀라게 했다.

직장을 잠시 쉬고 열린우리당 임종석(성동을)후보를 위해 자원봉사하는 김표모(41)씨는 거리 유세장에서 댄스풍 음악에 맞춰 선보인 율동이 눈길을 끌어 주민들에게서 "어제는 왜 안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통상적인 선거운동은 전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보도 있다. 민주당 김선문(군포)후보는 대신 지난 1일부터 10일 동안 서울에서 광주 5.18 묘역까지 걸어가는 '참회의 행진'을 했다. 군포로 돌아온 金후보는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정치권이 어떻게 표를 달라고 다닐 수 있느냐"면서 11일 저녁 단식에 돌입했다.

개정 선거법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의 선거운동이 대폭 허용됨에 따라 사이버 홍보 기법도 단골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서울 성동갑에 출사표를 던진 열린우리당 최재천 후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임방' 코너를 만들었다.

이곳엔 정당명과 기호 등이 적힌 피켓을 든 崔후보의 캐리커처를 다른 그림과 마구 섞은 뒤 정확한 위치를 알아맞히도록 하는 등의 플래시 게임이 등록돼 있다.

유권자가 선거사무소로 전화를 걸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후보자가 직접 녹음한 안내 멘트를 들려주는 경우도 많다.

김성탁.박성우 기자<sunty@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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