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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0만리>16.루앙 프라방 가는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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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도이창산 리수족 마을로부터 치앙라이시에 당도한 탐사팀은 두싯아일랜드라고 하는 호텔에서 뜻밖에 오래된 우리 민족문화유산 한가지를 만나게 된다.
바로 엘리베이터 앞 유리 상자 속에 넣어놓은 장식품.필자는 처음에 모형배인줄 알았다.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란 묘한 것이어서까마득히 잊어버렸던 하찮은 일도 우연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어쩌면 악기가 아닐까.』 그제서야 문헌을 뒤적여 확인해 본다.이렇게 해서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소중한 악기 하나가 태국 북부에 아직까지 남아 있음을 발견해 냈다.이름하여 와공후(臥공후).서양의 하프와 같이 맑고 고운 소리를 낸 다.동남아시아 도처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시대 악기를 모아 우리나라에서 연주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탐사팀이 치앙콩으로 향해 가는 도중 한 무리의 시골 사람들을만났다.탐사기간 내내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혹시 무엇이 있나 싶어 차를 세우는 버릇 때문에 이번에도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과연 그곳에도 소(簫)라는 고구려 악기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황금의 삼각지대 일대에서는 소.와공후 뿐만 아니라생황.비파.징.피리.북.자케(고구려 거문고의 원형이라고 판단되는 악기:중앙대 전인평교수 감정)등 우리나라 국악이나 농악에서사용되는 악기들이 많이 발견됐다.
치앙콩 메콩강변에 도착해 보니 과연 메콩강은 예상했던대로 그사이 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탐사대원 모두 감회어린 눈으로 메콩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변이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무슨 일일까.」 호기심에 강변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사람들이 배를 띄우고 그물을 깁는다.필자가 구릿빛 얼굴을 한 30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들 여기서 무얼 하고 있소.』 『쁘라븍을 잡아요.』 『쁘라븍? 그것이 뭐지요.』 『하참! 물고기요! 물고기!』 30대 남자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필자에게 핀잔을 주듯 대꾸했다.그런데 그물코의 크기가 사람도 들락거릴 정도로 크다.얼핏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큰 고기지요?』 『허 참!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고기지요.큰 놈은 한 3백㎏정도 나가지요.』 『3백㎏이라고? 그럼 그것이 어디 민물 고기요? 고래지.』 탐사팀은 라오스로 건너갈 생각은 아예 집어치워버리고 쁘라븍을 취재하기 위해 치앙콩에 눌러앉아버렸다.
『설마 오늘은 나타나겠지.』 이렇게 기다린지 벌써 4일째.그러나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주인공 쁘라븍은 종내 소식이 없다.
『어찌된 일일까.영영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짜증이 날만도 했다.동남아 지방에서 가장 덥다는 5월.
쁘라븍을 잡는 철이 되면 치앙콩 근처의 메콩강변은 일확천금을꿈꾸는 카누들로 붐빈다.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3백㎏쯤 나가는 쁘라븍 한마리를 잡으면 최소한 6만바트(약 2백만원)를벌어들이기 때문이다.그래서 1백여척이 넘는 카 누들이 밤낮없이그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5일째 되는 날 아침 갑자기 조용하던 강변이 떠들썩했다.너무오랫동안 기다렸던 터라 반신반의 하면서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저기 간다.』 그때 탐사대원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다.
놀라서 바라보니 어느 사이 일본 TV기자가 모터가 달린 카누를타고 쏜살같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우리팀도 일본 TV에 질수는 없다.
『빨리! 빨리!』 카누의 선장을 불같이 재촉하며 드디어 일본TV팀의 카누를 앞질렀다.카누는 수면과 맞물려 있어 까딱하면 물속으로 처박힐 것같은 위험이 있는데도 전속력으로 달려 드디어현장에 다다랐다.아닌게 아니라 거대한 생포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지상에서 코끼리를 잡는 광경을 방불케 했다.
쁘라븍을 잡은 치앙콩 건너쪽은 라오스 땅인 호이사이다.목적지는 루앙 프라방.공산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라오스왕국의 도읍이었던 곳이다.목적지까지는 약 3백㎞,조그만 쾌속보트로 7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다.
때마침 우기(雨期)라 탐사팀은 줄곧 비를 맞으며 메콩강을 내려갔다. 이렇게 3시간 반쯤 갔을 때였다.마을 하나가 시야에 나타났다.마을 이름은 무앙팍뱅.마을이라야 대나무로 엮은 움막집이 30여채 있는 그런 마을이다.보트가 서자 탐사대원들은 상륙해 움츠러들었던 팔다리를 곧게 펴느라 몸운동을 한다.그때 40대의 선장이 제의해왔다.
『술한잔 하겠소? 이런 궂은 날씨에는 술이 최고지.』 『술이있어요?』 필자는 평소 술을 못하면서도 이때만은 신바람이 나 탐사대원의 뒤를 따라갔다.마을로 들어간 탐사팀은 우연찮게도 그곳 산골마을 사람들이 담아놓은 막걸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우리와는 먼 나라 라오스에 막걸리라니.노르께한 색깔의 라오스 막걸리(라오스에서는 라오하이라고 부른다)를 시음해 보았더니 맛도 영락없는 우리나라 농촌의 막걸리였다.모두들 막걸리단지에 달려들어 한 단지가 텅 비도록 마셔댔다.두고온 고향 생각으로 목말라하던 탐사팀은 막걸리로 마음을 달랜 다음 다시 쾌속보트에 몸을싣고 메콩강을 따라 더 내려갔다.
운 쾌속보트는 끝내고 막 동굴을 빠져 나오는데 특이한 부처상하나가 눈에 띈다.그 금동부처상은 동굴 입구에서 메콩강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과연 저 부처상은 그 오랜 세월을 오로지 메콩강물만 바라다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세상의 온갖 것들은 태어나고,죽고 하지만 오직 시간만은 메콩강물처럼 영원하다는 도를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탐사팀을 태운 쾌속보트는 우여곡절의 긴 노정끝에 루앙 프라방가까이 다가선다.지나간 고생은 말끔히 사라지고 오랜 여정 끝에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기대감으로 모두 들떠있는 표정들이다. 그러나 눈을 씻고 봐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보트가 앞으로 진행할수록 의혹이 깊어만 갔다.
성미 급한 대원 한명이 더이상 못참겠다는 듯 뱃사공에게 물었다. 『도대체 루앙 프라방이 어디요.』 보트 끝에서 키를 잡고있던 40대의 건강한 뱃사공이 손을 들어 오른쪽 언덕을 가리켰다. 『저어기요.』 그러나 필자 일행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빽빽이 들어찬 코코넛 나무들 뿐.보트가 선착장에 도착한 후 언덕에 올라서서 보니 비로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큰 시가지가 시야에 나타났다.시가지가 코코넛 숲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림잡아 보아도 루앙 프라방은 우리나라 읍소재지보다 더 커보이지 않았다.때문에 필자의 머릿속에는 여전히의혹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루앙 프라방은 지난 4백년동안 라오스 왕국의 도읍터였다.
그런데 시가지가 작은 것은 둘째치고라도 어찌하여 당연히 있어야할 고성도,궁전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이 물음에는 지나가버린 세월을 거꾸로 되돌려야만 한다.1945년 2 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루앙 프라방에 거점을 둔 프랑스 식민지 잔존세력인 라오스의 왕당군과 공산 파테트라오군의 내전은 공산군의 승리로 막을내렸다.그 과정에서 「동양의 파리」라고까지 불렸던 이름다운 왕도 루앙 프라방은 철저히 파괴돼 버 린 것이다.
필자는 폐도가 돼버린 루앙 프라방을 보면서 1950년대 격동의 세월이 남긴 잔해를 보는 것같아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글.사진=김병호 박사 (유엔 FAO 아프가니스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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