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으니 올림픽 열정 더 솟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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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44년만에 베이징 올림픽 승마 마장마술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의 호케쓰 히로시. [EPA]

44년이 흘렀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긴 시간도 올림픽을 향한 그의 마음을 바꿔놓지 못했다.

일본 승마 마장마술 대표선수인 호케쓰 히로시(67).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44년 만에 베이징에서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무대를 맞이한다. 호케쓰는 베이징 올림픽 참가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도쿄 올림픽 당시 23세였던 호케쓰는 승마 장애물 비월 종목에 나가 40위를 했다. 12세 때 승마를 시작한 그였지만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호케쓰는 미국으로 유학, 듀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 존슨앤드존슨의 일본 지사장을 지낼 만큼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러면서도 말 고삐를 놓지 못했던 호케쓰는 35세가 되던 76년 종목을 마장마술로 바꿨다. 마장마술은 장애물 비월에 비해 체력 부담이 적은 종목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는 데는 마장마술밖에는 없을 것 같아서다. 직장 생활 와중에도 틈틈이 말을 타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어 갔다.

43세이던 84년 호케쓰는 LA 올림픽 일본 대표팀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최종 대표명단에서 빠지면서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4년 뒤인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마침내 최종 대표명단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하늘을 날 듯이 기뻤다. 하지만 출국을 앞두고 그의 출전마에게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바람에 검역을 통과하지 못했고 올림픽 출전은 다시 한번 좌절됐다.

나이가 들수록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점점 더 작아졌다. 그래도 꿈을 접지 않았던 호케쓰는 환갑을 넘긴 2003년, 꿈을 향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회사에서 정년 퇴직한 그는 부인과 딸을 일본에 남겨둔 채 홀로 ‘승마 강국’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지난 5년간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말을 탔고 승마에 필요한 가슴과 배, 팔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밤에도 땀을 흘렸다. 그의 트레이너인 톤 드 레더는 “호케쓰의 인내와 도전정신은 귀감이 될 만하다”고 극찬했다.

마침내 올 2월 호케쓰는 일본 승마팀의 올림픽 진출에 가장 큰 역할을 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63세의 나이로 88년 서울 올림픽 승마에 출전했던 이노우에 기쿠코의 일본 최고령 올림픽 출전 선수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호케쓰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단지 많은 나이 때문에 큰 관심을 받는 것이 싫다. 내 목표는 올림픽 출전이 아니라 메달 획득”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한편 역대 올림픽 최고령 선수는 72세의 나이로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 참가했던 스웨덴의 사격 선수 오스카 스완이다. 

강윤식 인턴기자

◇마장마술=승마 종목 중 하나. 말과 선수가 일체가 되어 직사각형의 경기장(마장·60mX20m)에서 33가지 규정 연기를 일정 시간(9분30초) 내에 펼치는 경기. 심판들은 말의 순종성·유연성·걸음걸이의 조화 등을 보고 채점해 순위를 매긴다. 체력적인 부담이 적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최준상(삼성전자)이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마장마술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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