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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북한>6.장군님의 군심 달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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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특별취재반> ▶중국=전택원 부장 ▶일본=방인철 부장 ▶美서부=안희창 기자▶독일=유영구 전문기자 ▶美동부=김용호 전문기자 평양에서 유행하는 말에 「통짜로 말한다」는 것이 있다.꾸밈없이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작년 11월 한 군관과 술을 마시며 「김정일비서가 군대를 대우해주는 정도는 어떤가」라고 물어보았다.그는 대뜸「우리 통짜로 말할까」라면서 말을 받더니「다른 부문에 비해 우리 군부의 대우가 월등히 좋지」라고 대답했다.그는 대단한 자 부심을 느끼고 있었다.』(재중 동포) 김정일(金正日)의 군부 우대는 외부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김일성(金日成)사망이후 군지휘관 6백여명의 일제 진급,고위지휘관들에게 아파트.벤츠승용차제공등 과단성 있는 그의 성격을 과시하려는듯 파격적인 조치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김정일이 군부를 중시하고 직접 장악해간 시기는 74년 당정치위원으로 등장한 다음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정일은 75년 군대에 배치된 당 일꾼과 보위대원들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그리고 군부대마다 김정일의 초상화가 1백% 걸렸다.민간에는 김일성 초상밖에 없던 시절이다.민간사회에서 김정일을 「지도자」로 부를때 군대에선 「영도자」로,「 영도자」로 할 때는 「수령」이라고 해 군부는 항상 한발짝씩 앞서 나가게 했다.』(재미 동포) 김정일은 이미 꼬박 20년 넘게 군부장악에 심혈을 기울여오고 있는 것이다.김일성 사망을 이유로 다시 그의 군부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동안 들인 김정일의 노력을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북한 군부는 김정일의 결정적 권력거점이다.김일성이 군부대를현지지도한 횟수는 3천번을 넘는다.김정일의 군부대 현지지도도 6백50여회나 기록하고 있다.이 점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나는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해 김정일비서가 군부 인사를 대하는태도를 보았지만 참으로 철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50대 초반의중장.상장등 고급지휘관들은 김정일에게 부동(不動)의 신뢰감에서우러나오는듯한 확고한 자세로 대했다.』(재독 동포) 김정일은 후계작업에서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는 비워놓은채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 자리를 차지해 통상 「장군님」으로 호칭되고 있다.이는 김일성의 「수령님」에 대응되는 것이다.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북한인사들은 김정일을 지칭할 때 반드시 「장군님」이라고 했다.군대경력이 전혀 없는 김정일을 왜「장군님」이라고 하는가.』 작년 6월 평양을 방문했던 한 외교관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면서 김정일이 군경력 없는 약점을 장군이라는 호칭으로 카무플라주하고 군부와의 관계를 친밀하게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원수복」을 입도록 주위에서 권해도 「통일된 그 날에 입겠다」며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김정일은 또 한편으로「장군님의 지도는 수령님의 지도와 다른 것」이라며 차별화를시도한다.장군님은 통이 크고 현실에 맞추어 변화 를 자재하는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선전한다.못사는 현실도 있는 그대로 대범하게 인정하고,따라서 부족한 물자는 외부에서 받아와도 좋다는 식이다.』(재중 동포) 김정일에게도 난제는 있다.북한에서 김일성이 창업주라면 김정일은 그 2세로서 「수성(守成)」을 감당해야 한다.군부는 곧 창업주 김일성이 심은 빨치산 출신과 그 전통을 주류로 한다.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권력이지만 그 속에 군부 의「충심」마저 들어있다는 보장이 없다.
『김정일은 군을 장악하고 있지만 군의 자발적 지지까지는 못얻고 있다』는 한 재미 동포의 언급은 이같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그럴수록 김정일은 승계를 서두르기보다 아버지에 대한 효성을 지극히 함으로써 그 자신에게로 군부의 충효 를 유발하는것이 필수적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군부가 나서 김정일의 주석추대작업이 진행됐지만 이를 매번 제지한 인물이 바로 김정일 자신이었다는 사실은이를 뒷받침한다.
『오진우(吳振宇)는 생전에 김일성의 유언에 따라 김정일을 바로 주석직에 추대하는 일을 완성하려고 서둘렀다.그러나 김정일 자신이 이를 제지했다.』(재중 동포) 『김일성 사망후 군인들은모두 김정일배지를 달았다.그러나 김정일의 지시로 2,3개월후 다시 김일성배지로 바꾸어 달았다.』(재일 동포) 지금까지 김정일의 권력승계 지연은 주로 부정적 시각에서 설명돼왔다.건강악화설,수재와 경제침체,권력투쟁설,그리고 자신감 결여 따위가 그것이다.그러나 김정일은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다.예를 들어 건강악화설도 최근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근거없는 것으로 부정한다.
『작년 10월 김정일과 단독으로 만났다.그는 이전과 다름없이건강하다.목소리도 정정하다.』(재미 동포) 『작년 12월 김정일비서를 비공식으로 만난 중국대표단에 따르면 김정일은 유난히 배가 불러보였고 대화를 나눈지 얼마 안돼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앞에 앉은 방문단에 들릴 정도였다.그러나 건강이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재중 동 포) 전통적 기준에서 보면 3년상은 올해 7월로 탈상이다.올 7월 김정일이 승계할 것이라는 소문도 그렇게 해서 나오고 있다.그러나 아직 김정일의 승계시기는 단정하기 어렵다.
작년말 북한을 다녀온 한 재미 동포는 『고위 간부에게 김정일이 언제 주석에 취임하느냐고 물었더니 「장군님만이 알고 있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또 한 중국동포는 『김정일은 작년 10월10일 당내부 모임에서 「97년 승계」를 공 언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김정일이 「3년상」을 내세워 군부와 민심의 심복(心服)을 기다려왔다면 그 효과를 반감시킬 조급함보다 마지못한듯 승계하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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