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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프리즘>김창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김창완은 늘 「여기」에 있다.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함께 있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면 그는 벌써 TV속에 들어가 있다.또 점심시간에는 커피숍 스피커에 웅크리고 앉아 사랑의 쓴 맛을 얘기하던 그가 퇴근길에 들른 극장의 스크린 위에서는 작 은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아늑한 거실의 TV,연인과 찾은 카페,어두운 극장의 한구석,집근처의 조그만 레코드가게,거리에 나붙은 포스터….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를 만날 수 있다.77년데뷔앨범 『아니 벌써』로 가요계에 충 격파를 던지며 나온 이후그는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그는 그동안 13장의 앨범을 냈고 영화와 TV드라마에 단골손님으로 출연했으며 밤에는 디스크자키로 영혼의 자장가를 틀었다.
그리고 틈틈이 사람을 찾아냈다.대학생그룹 동물원과 얼마전에 사망한 김광석이 그가 찾아낸 사람이다.
이제 그의 나이 마흔 셋.여전히 그는 바쁘다.지난해에는 MBC라디오 『FM골든디스크』진행자로 연말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받았고 화제의 드라마 『연애의 기초』에서 PD역을 맡아 연기자김창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덕분에 4월 개봉 예정인 록뮤직영화 『정글스토리』와 다음달 4일부터 방영되는 EBS드라마 『우리는 와이틴』에 잇따라 캐스팅됐고 몇몇 TV.라디오 프로의 진행자 노릇까지 하게 됐다.그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늘 「여기」가 아니고 「저기」에 가 있다.
『저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한 여자의 남편이며,한 집안의 장남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가수며,연기자며,진행자며,작곡가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죠.자신의 정체성을 지워버릴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한가지 일에만 매달리지 않으려고 합니다.감수성이 명령하는 대로 꿈꾸고 그 결과를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하는게 자연스러워요.』 그는 사회적인 성취에 삶의 많은부분을 걸지 않는다.오히려 남들이 서른이 되기전에 버렸음직한 불가능한 꿈에 더 많은 부분을 베팅한다.그것이 뭐냐고 하자 그는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지만 「저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아직도 그에게 설레임을 준다는 낱말 「자유」도 「저기」를 찾아가려는 몸짓이라고 한다.그가 말하는 저기에는 무엇이 있는걸까.언제부턴가 바로 코앞에 앉은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순간에도 등뒤로 아득히 보이던 소실점.그는 「저기」 사라지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그 작은 한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사라지기 때문에 더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들에 다가가려는 기웃거림과 망설임을 그는 사랑이라고 한다.
『예쁜 아내와 아담한 집과 새로 산 신발/창틀을 긁는 아침 햇살 모르는 채/잠들어 있는 내 아이의 포근한 행복/이 아침 부엌에서 들리는 수돗물 소리/나는 일어나 면도를 해야지/향긋한비누냄새/앞치마를 두른 아내의 모습이 즐겁다/집 이 좀 어질러져 있어도 좋다/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떨어져 있는가를 알기 위하여 신문을 보아야 한다/앨범도 가끔 보아야 한다/나는 가난했었고/사진 속 내 눈동자는 불안해 보였지/어머니 아버지는전란을 겪으셨고/나의 형은 젖이 모 자라 죽었네』(12집 앨범중 『불안한 행복』).
그의 가정은 누가 봐도 행복하다.가장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프리랜서고 아내는 소아과 개업의며 16세의 다 큰 아들이 있다.
가장은 남들에게 『쥐여 사는 즐거움을 아느냐』며 즐거워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엄마처럼 딸처럼 그에게 대한다.그래도 그는 불안하다고 한다.지난날 부모님이 전란을 겪었고 형이 그 여파로 죽었듯이 언제 그런 불행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의 불안은 단순히 행복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상실에 대한 노파심 보다 더 근원적이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가끔씩 애잔한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어릴때 자고 나면 낯익은 길가의 가로수가 베어지고 없거나 병정놀이 하던 낡은 건물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가끔씩 주위의 친한 사람을 보거나 가족을 볼 때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는 언젠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곁에 있는 것 하나 하나가 너무나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온다고 한다.마치 한순간 삶을 접고 다시 어린아이로 신생한듯그의 눈은 주변의 작은 것들에 한없이 끌린다.그가 중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 이 새로운 창의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일까.지난해 낸 앨범 『추신』에는 어린시절의 기억과 자잘한 일상에 대한 따뜻함이 듬뿍 담겨 있다.
『얘들아 놀자/땅거미 때까지 땅강아지가 되자/엄마가 이 골목저 골목 이름 부를 때까지… 우리는 눈이 빨개져 노는 거야…』(『땅강아지』).
안경 뒤에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과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천진한 그의 웃음은 소년을 연상시킨다.그러면서도 그 소년의 웃음에는 만만찮은 삶의 역정을 걸어온듯한 페이소스가 있다.무엇이그를 우수어린 소년으로 만들었을까.
『어릴때부터 선생님들을 불신했던 것같아요.학교에서 가르치는 걸 별로 믿지 않았어요.농대 나와서 가수하는게 상징적으로 제 삶을 요약하는 것 같아요.조숙하고 오만해서 조로했던 것 같고 나이에 안맞게 조로하다보니 거기에서 다시 새살이 돋은 게 아닌가 싶어요.그리고 나이들면서 끈질기게 잡고 있던 몇가지 삶의 가닥들을 놓아버리면서 편안해졌어요.』 지금도 예민한 사람들의 오만함과 거기에 깔려있는 어리석음과 나약함에까지 호감이 간다는그는 『왜』라는 질문에 『그게 불완전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같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리고 『나 자신이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인간이 되고 싶 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적당히 구겨지고 느슨한 삶이 그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91년출반한 12집 앨범의 제목 『아다지오』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말하는듯 보였다.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그는 이미 체득하고 있는게 아 닐까.
▶53년 서울생 ▶서울대농대 잠사학과졸 ▶77년 동생 昌勳.
昌翼과 록 그룹 『산울림』결성.데뷔작 『아니 벌써』를 비롯,『개구장이』『청포』『꼬마야』『산 할아버지』『너의 의미』등 히트곡다수. ▶95년 3월 13번째 앨범 『추신』발표 ▶MBC미니시리즈 『연애의 기초』등 TV드라마.영화 20여회 출연.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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