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主從不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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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코미디언이 국회의원 재출마를 포기하고 정계를 떠나면서 이런 취지의 말을 남겼다.
『정치는 코미디다.사람을 부속품(附屬品)처럼 만든다.모든 것은 위에서 결정되고 보통 정치인은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기만 할 뿐이다.』 요즘 10대들의 우상이라고 하는 서태지 그룹이 은퇴를 발표하면서 종속(從屬)에 관한 비슷한 내용을 말했다.
『창작적인 음악 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고 인기를 누리는 것이 좋기는 하다.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이제 그예속(隷屬)으로부터 벗어나니 후련하다.』 그렇다.모든 사람은 각자의 처지에서 일종의 예속품이요 부속품이 된다.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그를 종속시키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왕도신하나 백성들의 눈을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혼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 는 작가.작곡가.화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묶어두는 현재나 미래의 독자.청중,또는 감상자들이 있다.한 면에서는 노동자들이 종속된 처지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사용주들도 노동자들에게 예속되어 있다.
설사 직접적으로 주종(主從)관계가 없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먹이사슬의 관계처럼 우회적으로 무엇에든지 종속될 수밖에 없다.
명예와 재물을 떠나 오직 혼자만의 고요와 자유를 구하는 수도승이 있을 경우 그마저도 자기가 누리고자 하는 것 에 예속되고 만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종속에 대해 일찍부터 깊은 관심을보여 왔다.석가의 연기법(緣起法)은 바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을 가르치고 있다.사람은 홀로 서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또는 누구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고,상대의 변화에 따라 내 쪽도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空)의 상태에 있다는것이다.정주일(鄭周逸).서태지,그리고 세상의 단물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모래와 같은 상대의 변덕을 지반으로해서 자신의 성취가 서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종속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을 모든 사람이 원한다.그러나 인간은 존재 그 자체가 종속적으로 돼있다.그래서 불교는 이 종속관계를 역으로 이용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 한다. 법화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천태학에서는 지옥과 극락이 있을경우 그 둘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의 상태에서 한 몸이라고 풀이한다.지옥과 극락이 한 몸이라면 지옥 속에서도극락의 행동을 하고 극락을 살면 그 지옥이 극락 이 되고,극락속에서도 지옥의 행동을 하고 지옥을 살면 그 극락이 지옥이 된다.극락은 바로 종속으로부터의 해탈을 뜻한다.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극락행의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바로 해탈의 자리라는 것이다.
화엄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화엄학에서는 많은 구슬 거울의 비유로 종속관계를 풀려고 한다.큰 실내체육관의 모든 벽면.천장.
바닥이 온통 작은 구슬 거울로 장식되어 있다고 치자.하나 하나의 모든 거울들이 연쇄적으로 상대의 거울과 그 거 울 속에 비추어진 내용을 반사하게 된다.그 반사의 관계 속에서 따로 정해진 주(主)나 종(從)이 없다.서로 주가 되고 종이 된다.모든존재의 모습도 이와 같은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관계에 있다.이 실상을 여실히 체달하면 주와 종 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다.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그러나세상은 모든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그래도 일단 선택이 있은 다음에는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주종의 불이(不二)를 깨달으려고 해야 한다.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만들 때만 나름대로의 해탈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釋之鳴 청계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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