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합리성' 再조명 제자리 찾기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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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동안 우리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론또는 탈현대론)의 거품현상이 걷히면서 이와 긴장 혹은 보완관계에 있는 이론들이 학계에 새로운 관심이 되고 있다.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에 제자리를 잡아주려는 시도다.
70년대부터 서구에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은 80년대말 사회주의 붕괴 이후「이성적 주체에 의한 필연적인 진보의 가능성」을 회의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일세를 풍미했다.기존의 진보이론에 대한 대항이론 같은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이나 합리성,진보라는 관념들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절제한 지배를 가능케 함으로써 인간성과 생태계를 파괴.억압해왔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이에 따라 독단의 가능성을 가진 이성의 해체,이데올로기나 무의식 등과 같은 비이성을 보다 중요한 요소로 복권시킬 것을 주장했다. 지난 70년대 프랑스에서 등장한 철학 및 사회학 이론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성의 해체를 주장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이성을 무의식에 대한 심리분석으로 대체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총체화를 거부하면서 차이를 강조한 철학자 장-프랑수아 료타르,기호를 통해 표현되는 상상적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에서 재생산되고 소비되는가를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 등으로 대표되는포스트모더니즘 이론들이 90년이래 봇물처럼 국내에 소개돼왔다.
그러나 최근 무차별적 소개와 일방적 비판이 빚어낸 거품이 걷히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기한 문제들을 이성의 범위 안에서,혹은 비이성의 범주를 이성의 주도 아래 적절히 도입하면서 해결하려는 보다 균형잡힌 이론들이 대두하고 있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대표적인 논자다.그는 우리가 이제까지 믿어온 근대적 발전이 모순과 소외를 야기한다는 사실을인정하면서도 시민들의 민주적 토론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합리적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성적 낙관주의를 내 놓았다.
그는 합리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신보수주의와결탁한 반동적 시대정신」이라고 단정지었다.그의「의사소통행위론」은 요즘 우리 철학.사회학.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가장 환영받고있는 이론 중의 하나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도 여기에 낀다.그는 이성과 사회변화의 주체를 동일하게 파악해왔던 다른 논자들과 달리 근대의 특징을 이성과 주체 사이의 긴장.균열로 설명한다.그는 양자의 분열현상을 극복한 이성적 주체의 회복은 사회운동을 통해서 비로소가능하다고 보는 새로운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근대적 이성이 만들어낸 사회적 조건 위에서 탈근대적 상상력을 결합해 대응할 것」을 강조하는 미국의 사회학자 배리 스마트,지난해 10월 영국에서『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출간해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도 이런 맥락에서관심을 끌고 있는 인물.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도식적인 모더니즘과 이성의 종말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모두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이같은「균형자적 이론」들에 대한 관심은 근대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이성」개념의 급진적 해 체가 대항의논리가 되기보다 또다른 지배의 도그마를 산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
투렌의『현대성의 비판』을 번역한 정수복 박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과잉 현상을『프랑스의 지적.사회적 배경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없는 채 편향과 상업성에 편승한 결과』라고 진단했고,한신대윤평중교수는『새삼스런 얘기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 요한 것은 학문적 종속성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이 분야에 대한 번역 신간들은 다음과 같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관악사).『새로운 불투명성』(문예출판사),알랭 투렌의 『현대성 비판』(문예출판사),배리 스마트의 『탈현대성의 개념』(현대미학사).『현대의 조건,탈현대의 쟁점』(현대미학사),앤서니 기든스의 『좌파와 우파 를 넘어서』(한울:출간예정) 김창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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