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오일쇼크 왔다] 뜨거운 기름값 … 서울 목욕탕 올 들어 100개 문 닫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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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분양 중인 남대문시장의 A상가 1층이 텅 비어있다. 고유가와 경기침체로 점포를 내려는 상인들이 확 줄어든 탓이다. [사진=변선구 기자]

4년 동안 서울 구로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한 강명구(45)씨는 7일 한 외식업체의 사원모집 인터뷰장을 찾았다. 가게 문을 닫고 취업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는 “기름 값이 오르면서 비용이 크게 늘었지만 손님은 줄어 얼마 전 점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66m² 규모의 가게에서 올린 하루 매출은 60만원가량. 매달 점포 임대료 150만원과 직원들 인건비 250만원, 식재료 구매비용 300만원, 전기·가스·수도료 100만원 등 800만원을 제외하고도 수백만원이 남는 장사를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는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만 챙길 수 있었어도 장사를 접지 않았을 텐데…”라고 토로했다.

물가 상승과 소비 감소로 문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폐업한 음식점은 5300여 개, 휴업한 곳은 1만3000여 개로 추산된다. 김태곤 한국음식업중앙회 홍보국장은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광우병 파동 여파에다 유가마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음식점들이 고사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서울 양평동에서 세탁소를 하는 김강철(43)씨는 요즘 틈틈이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 분리 수거장을 찾는다. 철사에 비닐을 감싼 세탁소용 옷걸이가 나와 있나 해서다. 최근 들어 400개 들이 옷걸이 한 박스 값은 2만원. 지난해엔 1만2000원이었다. 드라이클리닝용 기름은 같은 기간 18L에 2만1000원에서 3만1500원으로 뛰었다. 그는 “예전 같으면 세탁소에 맡겼을 옷도 지금은 그냥 집에서 빠는 분이 많다”며 “부부가 오전 7시에서 밤 12까지 일하는데도 한 달에 200만원 정도밖에 안 남는다”고 말했다. 8년째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용순(44)씨는 “빵집이 제일 어렵다”고 한숨부터 쉬었다. 올 초 20㎏짜리 밀가루(박력분)가 1만9000원이었는데 지금은 2만2400원. 버터·설탕·식용유·치즈 가격도 20~80% 뛰었다. 그는 “요즘 빵집을 인수한다는 사람이 없어 문을 닫으려야 닫을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목욕탕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 장안동에서 찜질방을 운영하는 문장주(35)씨는 “연료비가 전체 비용의 80%를 넘었다”며 “문을 여는 시간이 늘수록 적자를 봐 빨리 가게를 정리하고 싶지만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목욕업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서울에서만 100여 개의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재래시장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20년 넘게 아동복 매장을 하고 있는 김명숙(52)씨는 “일 년에 여덟 번 정도 새 옷들로 매장을 바꿔 꾸몄는데 올해는 다섯 번만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손님이 없으니 물건을 내놓아도 소용없다고도 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남대문 A상가 내부는 평균 10㎡의 매장 80여 개가 들어설 수 있지만 절반 정도만 물건이 진열돼 있다. 백승학 ㈜남대문시장 기획부장은 “예전 같으면 앞다퉈 입점했을 텐데 새로 점포를 내려는 사람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덧붙였다.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전에는 이런 위기가 닥치면 정부가 자영업단체장들과 여러 번 대책논의를 했는데 올해는 보름 전 첫 회의가 열렸을 뿐”이라며 “행정안전부와 국회가 민생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병주·임미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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