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밖] TV프로와 음악 앨범 ‘잘못된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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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니카 그룹 클래지콰이의 남성 보컬 알렉스. 인기가 상한가다. ‘훈남(훈훈한 남성)’을 넘어 로맨틱 가이의 대명사로 통한다. MBC 인기프로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스타들 간의 결혼이라는 가상 리얼리티 공간에서 알렉스는 파트너 신애에게 각종 이벤트를 선사하며, 많은 여성의 마음을 녹였다.

그가 ‘화분’ 등 신애에게 불러준 노래를 담은 디지털 싱글에 이어 솔로 1집 앨범 ‘마이 빈티지 로맨스(My Vintage Romance)’를 최근 냈다. 예상대로 주류 발라드 스타일이다. ‘우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젠틀하고 로맨틱한 이미지를 음반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사랑하오’ ‘깍지 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등은 제목부터 ‘우결’ OST에 적합할 듯하다.

음악평론가 이대화(웹진 이즘 편집장)씨는 “존댓말 가사와 과장되게 친절한 무드로 보아 여심(女心) 잡기에만 목표가 쏠렸다”며 “창법·가사·장르가 하나같이 신애의 파트너와 동일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우결’에서 알렉스-신애 커플 못지않은 궁합을 자랑하는 솔비-앤디 커플도 음악이 부드럽고 달콤해졌다. 솔비가 최근 내놓은 디지털 싱글 ‘큐트 러브(Cute Love)’는 앤디를 향한 사랑고백이다. 과연 댄스그룹 타이푼의 여성 멤버 솔비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솔비는 아예 대놓고 ‘우결’의 테마곡으로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 초 솔로 앨범을 냈던 신화의 멤버 앤디도 최근 연인들을 위한 노래 ‘프로포즈’를 넣은 리패키지 앨범을 발매하며 로맨틱 가이 대열에 동참했다. 크라운 제이가 자신의 노래 ‘투 머치’에 ‘우결’ 파트너 서인영을 피처링으로 참여시킨 것도 ‘우결’ 커플 마케팅의 냄새가 짙다.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타들의 새콤달콤 사랑은 즐겁다. 하지만 가수들이 ‘우결’을 통해 스타가 되고, 브라운관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이미지 복제 앨범을 내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가수’는 실종되고 ‘엔터테이너’만 남은 것 같다. 가요계의 TV 예능프로 종속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우결’ 출연 가수들의 이미지 앨범은 음반의 음악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가요계의 방송 종속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안 그래도 음반이 팔리지 않는 가요계에는 요즘 이벤트 음악이 판친다. 각종 행사에 불려나가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노래를 말한다. 그런 이벤트 음악에 또 다른 정의를 추가해도 될 듯하다. ‘우결’의 이벤트성 ‘작업송’ 말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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