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대중성 잘 녹여야 베스트셀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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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양귀자씨의 연애소설 『천년의 사랑』(상.하2권)이 발간 6개월만에 1백만부를 돌파,김진명씨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2년여만에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이 작품의 성공은침체의 늪에 빠진 출판계에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 분하다.문예출판사의 전병석사장은 이에 대해 『상품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작품만 발굴하면 언제든지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며 반가워하고 있다.
소설과 시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적절히 녹여 성공한 작품은 이것만이 아니다.소설부문에서 『천년의 사랑』과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열린 책들 刊)와 시 분야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정하 씨의 『너는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푸른 숲 刊).용혜원씨의 『그대곁에있을수만 있다면』(민예원 刊)도 그런 작품들.이 작품들의 특징은 사랑과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게 된 배경은무엇일까.무엇보다 많은 독자가 사회적 이슈에 비교적 둔감해지고내면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새로운 추세를 꼽아야 한다.
이미 단편집 『원미동사람들』로 탄탄한 문학성을 인정받은 양귀자씨의 『천년의 사랑』.천년전에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현세에서꽃피운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이상하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발휘하고 있다.천년에 걸친 사랑의 완성이 암시 하는 항시성(恒時性)이 시시각각 급변하는 환경을 사는 현대인들의 공허감을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미국의 연애소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가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문학평론가인 도정일 경희대교수는 연애소설의 인기와 관련,『우정이나 사랑이 돈과 같은 현실적인 가치에 밀리고 있는 현실에서현대인들이 맞고 있는 「진정성」의 위기를 간접적이나마 달래주기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독일 소설가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는 한 소년의 눈을 통해 이성과 인습의 틀에서 탈출하려는 보통인간 좀머씨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특히 이 작품은 92년에 소개됐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최근에야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 상한 현상을보이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비자금 사건 등으로 돈과 권력의 무상함을 눈으로 확인한 독자들이 평범한 삶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어느 정도 작품성을 갖춘 감성시집 『너는 눈부시지만…』와『그대 곁에…』이 1년 이상 사랑을 받는 것도 독자들의 이같은독서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종류의 작품이 비평가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특히『천년의 사랑』의 경우 아무리 대중소설이라 하더라도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고 그것이지금과 같은 불황속에서 1백만부 이상 팔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작품에서 사회현상을 짚을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주변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비평가는 쉽게 접할 수 없다.비평이 문학을 바른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로서의 역할도 맡는다면 이는 어느비평가의 표현대로 비평가들의 「직무유기」임에 틀림없 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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