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지구촌 표정 ‘생생 스케치’ 피카소 꿈나무들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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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시작해 격년으로 열리는 국제 어린이 미술 공모전이다. 지난해 비엔날레엔 전 세계 85개국, 2만4000여 점의 그림이 접수됐다. 만4세부터 15세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수상작 523점 중 200여 점이 한국에 왔다.

“엄마, 왜 저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어?”

전시장에서 만난 여섯 살 리은이는 태국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어머니 이은경(34)씨는 “아이들 그림 한 장 한 장이 특색 있다”며 리은이의 손을 꼭 붙든다.

각국 어린이들의 그림이 모인 만큼 전시작들엔 웃음과 눈물, 대륙별로 나라별로 다양한 문화 스펙트럼이 담겨 있다.

“이 눈 좀 보세요, 심사위원들이 반해버렸죠.”

전시를 주최한 동원육영재단 김은자 과장은 대상을 받은 정인경 어린이의 ‘어항을 바라보며’를 가리킨다. 어항 속 물고기들과 대화하는 듯한 눈동자가 익살맞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12세 소녀가 그린 ‘유부 우동 한 그릇! 계란을 풀어 완성’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 쪽이 묵직해진다. 우동을 만드는 아버지 얼굴에 손을 대면 땀이 흥건할 것 같다. 하루 500그릇의 우동을 만드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아이답지 않은 그림도 눈에 띈다. 파키스탄의 한 어린이는 호화로운 파티를 벌이고 있는 이들 옆에 눈물 고인 이들을 어둡고 조그맣게 그려놓고 ‘부자와 가난함’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대륙별로도 특색이 보인다. 아시아 어린이들 그림은 대개 마을을 배경으로 가족이 등장한다. 전통과 신화에 대한 애정도 진하다.

반면 유럽에서 온 작품들은 한 사람만 등장하거나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킨 게 많다. 색상도 밝은데,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면 그 경쾌한 느낌이 더욱 두드러진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그림에선 여유와 한가로움이 묻어난다. 황토빛 색감은 자연스럽고 따뜻하다.

◇아이 눈높이로=전시장에서 어른들은 낮게 걸린 그림에 허리를 굽혀야 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배려다. 작가도 관객도 아이, 전시의 주인공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체험 교육에도 신경 썼다. 디지털 체험방에서는 컴퓨터 모니터에 전자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도록, 모래 마법의 방에선 맘껏 모래 장난을 칠 수 있도록 했다. 여느 전시장과는 달리 사진 촬영도 자유롭다. 아이 손을 잡고 전시를 보고 나면, 집에서 아이가 그리는 그림도 예사롭지 않게 보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와 그림에 대해 말할 때 간섭보다 질문을 하라고 조언한다. 미술도 결국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선 미술학원의 판박이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공주교대 백인현(미술교육과) 교수는 “질문을 통해 그림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끌어내라. ‘왜 이걸 그렸니?’ ‘왜 이 색을 칠했니?’ 대화하다 보면 논리적 사고와 풍부한 감성을 함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또 칭찬은 아이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백 교수는 “‘색이 참 예쁘다’‘주인공의 표정이 생생하다’ 등 구체적으로 칭찬할수록 아이들은 신이 난다”고 말했다.

신구대 조희순(유아교육과) 강사는 함께 전시를 다녀온 뒤엔 “너라면 어떻게 그렸을 것 같니?”라며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 전시의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개성이 미술, 나아가 예술의 핵심인 까닭이다. 입장료 5000원. 02-2058-3025.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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