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장 박차고 나온 다음날 휴대전화 울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9호 27면

박인구 부회장의 사무실에는 거꾸로 된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라는 뜻이다.

고유가 여파로 참치값이 뛰고 있다. 2006년 말 t당 1080달러였던 참치 가격은 6월 말 기준 1970달러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웰빙 열풍으로 육류 소비가 줄고 있는 것도 참치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원그룹이 지난달 30일 미국 델몬트의 수산사업 부문인 스타키스트를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3억6300만 달러(약 3793억원). 국내 식품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다.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이 들려준 美 ‘스타키스트’ 인수 뒷얘기

스타키스트는 미국 참치 캔 시장의 37%를 점유하고 있는 1위 참치 브랜드다. 동원그룹 창업자인 김재철 회장이 원양어선 선장 시절 참치를 납품하던 회사이기도 하다. 그런 회사를 동원의 계열사로 편입한 것이다. 이번 M&A 총괄 책임은 김 회장의 매제인 박인구(62) 동원그룹 부회장이 맡았다. 그는 주미 한국 상무관 및 상공부(현 지식경제부) 부이사관을 지냈으며, 97년 동원정밀(현 동원시스템즈) 대표, 2000년 동원F&B 대표를 거쳐 2006년 동원그룹 부회장에 취임했다. 그에게서 인수 뒷얘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어떻게 인수하게 됐나.
“올 3월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대만의 원양어업 회사, 글로벌 사모펀드 등 7사가 인수전에 참여했다. 동원이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인수에 성공했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참치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참치 캔 제조업체인 스타키스트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동원은 원양어선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싸게 참치를 공급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갖고 인수를 추진했다.”

-협상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마지막 카드를 던지고 일어선 게 두 번이다. 미국에서 세 번 협상하면서 ‘이게 마지노선’이라고 통보하고 그대로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 한 마지막 협상 때도 그랬다. 마지막 조건을 제시한 뒤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다. 다음날 새벽 축구를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가 올 것 같아 바지에 휴대전화를 넣고 뛰었는데 예상대로였다. 물론 평소 축구를 할 때엔 휴대전화를 안 받는다.”

-지난달 26일로 예정됐던 체결식을 왜 30일로 연기했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협상 문안 작성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 이번 협상은 회사 전체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수산사업 부문만 인수하는 것이라 과정이 복잡하다. 앞으로 2년간 델몬트가 미주 지역 세일즈 및 조직 관리에 대해 애프터서비스를 담당한다. 이 비용으로 연간 3000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

-인수 비용 조달은 문제 없나.
“인수액의 60% 정도를 동원이 조달한다. 나머지는 다수의 재무적 투자자가 맡는다. 협상 타결 이후 투자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자금 조달엔 아무 문제가 없다.”

-참치 사업 비중이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정보통신의 발달은 세계적으로 브랜드의 단일화를 가져오고 있다. 1위 브랜드의 파워가 갈수록 커져가는 것이다. 스타키스트는 세계 최고의 참치 브랜드다. 하지만 제품의 질은 동원이 월등하다. 동원의 기술력과 스타키스트의 브랜드가 결합하면 브랜드 파워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참치 캔을 기반으로 연어 캔, 고등어 캔, 게살 캔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 김·김치·녹차 등 다른 동원 제품의 미국 진출 교두보로 삼겠다. 동원그룹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도입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식품 안전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참치 캔에서 칼날이 나오는 사건도 있었다.
“불편을 끼친 소비자에게 정말 죄송스럽다. 안전 강화를 위해 150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다. 공산품 불량률을 따질 때 100만 분의 1을 뜻하는 ppm이라는 단위를 쓴다. 100만 개 가운데 하나꼴의 불량률이라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식품도 자동화된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다. 이건 중금속 등의 유해 성분과는 다른 것이다. 수백만 개 제품 중 하나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다고 해서 그 회사 전체 제품을 불량품으로 매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협상 중에도 축구를 하다니, 축구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우연의 일치지만 히딩크 감독과 같은 날(1946년 11월 8일) 태어났다. 매일 오전 6시부터 한 시간씩 동네 조기축구 회원들과 축구를 한다. 요즘엔 기타도 배운다. 축구팀이나 기타 학원에서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스스로를 낮추게 되고 새로운 세상도 배운다. 일부러라도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