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에게서 배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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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15면

누구를 만나든 ‘요즘 뭐 해 먹어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요즘은 “글쎄요. 저는 가능하면 조리를 덜해 먹을 방법을 찾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썩 당당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조리를 덜하는 게 왠지 게으르고 무신경하다는 뜻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나도 얼마 전까지는 요리책을 보면서 손이 많이 가는 별식을 만들려고 땀을 흘리기도 했으니, 덜하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요즘 일주일에 네댓새 저녁은 별다른 반찬 없이 야채 쌈에 밥을 먹는다.

야채 쌈은 정말이지 준비랄 게 없다. 불을 쓸 일도 없다. 그저 푸성귀만 씻어 준비하면 된다. 밥이 찬밥이어도 괜찮다. 야채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굳이 여기서 하지 않아도 되겠다. 유기농 전문 매장이나 생협을 가지 않아도 쌈을 싸 먹을 잎채소는 무농약이나 유기농의 것을 상점에서 쉽게 살 수 있으니, 그것도 편한 일이다.

푸성귀만 먹자니 물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상추·깻잎·쑥갓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이름도 외우지 못하는 갖가지 잎채소들이 정말 많다. 처음 보는 것이라도 생김새를 보면 맛이 짐작이 간다. 이것들을 고루 섞어서 먹으면 물릴 새가 없다. 나는 쌉쌀한 맛도 좋아해 푸른 잎뿐 아니라 붉은 잎도 섞어 골고루 산다. 여기에 장을 조금씩 달리하면 맛이 늘 새롭다.

된장에 다진 마늘과 꿀과 참기름만 조금 넣어 간단한 쌈장을 만들기도 하고, 멸치젓을 다져 넣기도 하고, 볶은 고추장을 놓기도 한다. 이렇게 먹으면 먹고 난 뒤에 그릇을 닦을 때도 편하다. 세제를 쓸 필요도 없이 수세미로 쓱쓱 닦고 헹구기만 하면 설거지는 끝이다. 담을 때도 나무 채반이나 유리 접시에 푸짐하게 담는다.

나무와 유리로 만든 그릇과 옹기가 우리 몸에 해를 끼칠 위험이 가장 적은 그릇인데, 자연스레 그런 그릇을 쓰게 되는 것이다. 주로 먹는 음식을 바꾸니 다른 것들도 절로 좋게 바뀐다. 주방세제를 환경과 내 몸에 덜 해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식기를 건강에 해롭지 않고 재활용하기 좋은 소재의 것으로 바꾸는 점도 필요한 일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을 바꾸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각각의 일들은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서로 연관을 맺고 있음을, 가장 근본적인 것을 바꾸지 않는 한 눈에 보이는 것을 하나씩 개선하는 것은 소용이 없음을, 푸성귀를 먹으면서 나는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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