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아리송한 말이 猛於虎也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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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십시일반(十匙一飯)이 아니라 수백만시일반(數百萬匙一飯)일는지는 모른다.다만 대한민국 정부 장관도 그렇게 너와 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한 숟가락씩 보탠 세금으로 녹(祿)을 주어 부리는 사람이란 점만은 짐짓 밝혀 두고 싶다.
『재벌기업인 우성건설이 부도처리된데 대해(건설행정 담당 장관으로서)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그러나 우성건설이 비교적 견실한기업이었기 때문에 누가 인수하더라도 곧 회생(回生)할 수 있으며….』 이것은 추경석(秋敬錫)건설교통부 장관이 한 말이다(서울경제신문).
아무라도 인수하면 곧 회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이라면왜 우성건설의 현재 경영진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에 비하면식은 죽 먹기처럼 쉬울 일을 그럭저럭 숨쉬고 있기조차도 못해 쓰러졌을까.아파트 잘 짓는다는 입주자들의 따뜻 한 칭찬 속에서청명한 날의 연(鳶)과도 같이 힘차게 솟아올라 아파트 짓기 하나로 재벌 그룹을 이루어 내고 재계랭킹 27위에 훌쩍 진입할 수 있었던 우성재벌.그런 경영진의 재주와 뚝심과 행운으로도 못살려 죽이고 만 것이 우성건설이 다.그래서 秋장관의 이 말은 아리송하다.
회생이란 말은 덕담(德談)으로서는 회춘(回春)이란 말보다 더달콤한 위로(慰勞)다.그러나 초상집에 가서 병풍 뒤에 있는 송장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실없다.더구나 자기 자신이 깊숙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혐의까지 받고 있는 사 고사(事故死)한 송장을 두고 하는 말일 때는 덕담이기는 커녕 변명으로 밖에들리지 않는다.
건교부의 무대책(無對策)은 작금의 건설업계 상황으로 보아 우성과 같은 부도.도산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데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그 전모가 확실히 드러난다.
『(제2의 우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들)무슨 특별한 조치가있을수 있겠습니까.(규제완화는)범정부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하므로 현재로서는 무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秋장관은 범정부(汎政府)에 대책을 미룬 것이다.우리는 세금을 내고 아리송한 말 속에 사는 국민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안팎의 적과 싸우고 있다.밖의 적은 열린 세계의 호랑이 같은 외국 경쟁자들이고 안의 적은 닫힌 우리 속에서 함께 있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우리 정부의 규제다.새끼줄로 몸 몇 군데를 묶인 채 순 육식동물인 외국 기 업 호랑이와싸우는 격이다.
공자가 태산을 지나가다 한 부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제자를 시켜 그 까닭을 물으니 호랑이에게 남편과 자식을 잃었다는것이었다.그러면 이 산중에 살지 말고 마을로 내려가 살면 되지않겠느냐고 공자가 제자를 시켜 굿 아이디어랍시 고 전했다.그러나 『산중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다』고 그 부인이 말했다.그 말을 듣고 공자는 다음과 같은 정리(定理)를 세웠다.「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也,禮記)」.
글로벌 경쟁시대의 기업에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가정(苛政)이곧 정부의 과잉 규제,특히 사전적이고 직접적이며 개별적인 규제다.이런 가운데 나웅배(羅雄培)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 이렇게말한다(매일경제신문).
『우리 경제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우성건설 부도로 경제안정 기조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기업처리 문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책임경영 의식 아래 여신을 맡은 금융기관의 자율판단에 맡기는 것이 경제논리에 충실하는 것입니 다.』 지향하는 바는 바람직하고 수사(修辭)는 단정하다.그런데도 왜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어제 한 네 말」보다도 더 아리송하게들릴까.우성건설 도산이 羅부총리의 말대로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암(癌)세포처럼 온 몸에 이미 번졌 을 수 있는 병이라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그런 까닭만은 아니다.「에테르에 마취돼 수술대 위에 누인 환자」처럼 겹겹이 규제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을 두고 책임경영.자율판단.경제논리따위를 갖다 붙여 전개한 스테 이트먼트는 전제(前提)가 허언(虛言)이므로 결론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잡은 결론이었다. 그러나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것은 정부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고 사는 그 입으로 아리송한 말을 쏟아 내,그런 말의 무덤 속에 자기 책임을 묻어버리는 일을 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내는 일이다.
강위석(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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