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불황보다 강하다] ‘김가네’ 김용만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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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아내와 함께 33m²(10평) 가게 바닥에서 쪽잠을 자며 김밥 한 줄 한 줄 정성껏 말아 내놓은 10년. ‘김家네’의 김용만(52·사진) 회장은 김밥 가맹점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2004년, 번듯한 4층 건물을 가진 사업주가 됐다. 지금은 400여 가맹점에 연매출 200억원(가맹점 포함 때 700억원)의 프랜차이즈 오너다. 그는 지난해 정부 주관 행사에서 중소기업 부문 명예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올 들어선 한국프랜차이즈협회장이 됐다.

그가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김밥집을 차린 건 1992년. 강원도 춘천에서 하던 직장생활을 접고 뛰어든 생계형 창업이었다. 그저 먹고살려고 대충 하다간 망하기 십상이라고 처음부터 각오했다. 아내 박은희(47)씨와 전국을 돌며 맛있다고 소문난 김밥집은 거의 다 가봤다.

그러던 중 아내가 불쑥 아이디어를 냈다. “여보, 김밥을 직접 만드는 모습을 행인들이 보도록 하면 어떨까.”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쇼윈도형 주방이었다. 김밥 안에 내용물을 싸는 김을 한 장 더 넣자, 김밥 만드는 주방 판 밑을 시원하게 해 재료가 되는 야채를 신선하게 유지하자는 아이디어가 백출했다. 그 김밥집은 금세 동네 명물이 됐다.

그리고 2년 뒤.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던 이웃 고객이 “김밥 맛에 반했다”며 찾아왔다. 그는 “아내에게도 이런 김밥집을 차려주고 싶다”고 문의했다.

가맹점 1호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이때부터 김 회장의 김밥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97년 외환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였다. 외식비를 줄이는 대신 김밥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실직자들의 가맹점 가입 문의도 쇄도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프랜차이즈지만 흔한 지입차 한 대 없이 물류 차량을 손수 운영했다. 일정 매출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지역에는 문의가 와도 가맹점을 내지 않았다.

“사전에 상권 입지를 철저히 파악했어요. 한 달에 가맹점 8개 이상은 오픈하지도 않았고요.”

김家네를 장수 브랜드로 만든 건 그의 쇠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원칙은 3∼4년이면 브랜드가 무너지기 일쑤인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김家네를 업력(業歷) 15년 이상의 장수 브랜드로 키워내는 원동력이 됐다.

김家네 김밥 한 줄 값은 2000원이다. 수년 전부터 1000원짜리 김밥집이 많이 생기면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일부 직원은 “우리도 1000원짜리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여기서도 쇠고집은 여전했다. 품질과 그에 걸맞은 가격을 고수했다.

김家네 체인 본사의 임직원 수는 100명으로 김밥 프랜차이즈치고는 많은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 회장은 “가맹점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년 전에는 주꾸미전문점 쭈가네를 오픈했다. 여기서도 그는 가맹점 모집을 서두르지 않고 내실을 다지고 있다.

그는 “누구든 기막힌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는 있지만 관리력이 없으면 쓰러지고 만다. 느리지만 내실을 다지는 게 가장 빨리 성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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