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42.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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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가능한가.』 올해 수능시험에서 언어영역은 매우 어려운 지문이 출제돼 학생들이 대단히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실 학생들이 쉽게 접해보지 못한 지문이 출제될 경우 그 내용 파악부터 쉽지 않기 때문에 답을 찾기어려운 것은 당연하다.교과서만 읽고 마는 식의 고등학교 수업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이제 수능시험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게 됐다.
한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수능시험이든 본고사 논술이든 대학교수가 출제한다는 사실이다.교수들은 이 시험을 통해 수험자가 대학에서 교육받을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를 판단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들은 대학교육에서 제기될 수 있 는 기초적인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답안도 상식적인 내용보다 근본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논제를 출제한다.지금까지 이 지면에 예시한논제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특히 위의 논제는 대학에서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교수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근본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원래 과학은 근대 이후 자연에서 반복되는 기계적 현상을 법칙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물론 과학의 발전으로「과학」이라는 개념 내용이 달라져왔음에도 이같은 과학의 이념은크게 변하지 않았다.바로 이같은 자연과학에서 출발한 과학의 이념을 과연 사회.문화적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 논제가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사회.문화현상과 자연현상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연현상과 달리 사회.문화현상의 특징은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개입한다는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조건도 인간의 의지와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개입되는한 사회.문화현상은 자연법칙과 같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현상이 개별적이고 특수할 수밖에 없다.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는 바로이같은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다.이 견해에 따르면 사회나 역사에대한 과학적.법칙적 인식은 불가능하며,오로지 개별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이해」만 가능하다.반면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서도과학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양자 사이의 차이보다 공통성을 더 강조한다.인간의 의지와 선택은 그 사회의 물질적 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으므로 그러한 사회.문화현상에 대해서도 과학의 이념이 적용될 수 있다 고 주장한다.
문과 학생에게 자연과학적 소양이 필요하고 이과 학생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이유를 쓰라는 95년 고려대 논술논제도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제된 것이다.
〈다음회의 논제는 『문화란 고유한 것인가 보편적인 것인가』입니다.〉 김창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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