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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노인에게 ‘완전 채식’은 좋지 않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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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22면

최근 채식 ·자연식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교보문고 등엔 관련 코너가 마련됐다.

가위 신드롬이라 할 만했다. 1980년대 말, 우리 국민이 슬슬 ‘배를 채우는 먹거리’가 아닌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을 때 재미 의학자였던 이상구(65)씨의 채식 건강론은 식탁을 뒤흔들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의 소비가 부쩍 줄고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이씨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에 대해 관련 단체들이 방영 금지를 요구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채식의 건강학

당시 식품·의학계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단백질·지방질의 섭취가 서구에 비해 크게 모자라는 우리 실정을 모르는 소리다. 맹목적인 채식주의는 자칫 영양실조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반대론과 “우리도 이제 이상구식 건강론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는 지지론이 맞섰다.

결국 “시기상조”라는 논리가 우세해지면서 90년대 초반까지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누리던 이씨는 슬그머니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어쨌든 이상구 신드롬은 당시 ‘고기는 무조건 많이 먹으면 좋다’고 생각했던 대다수 국민에게 육식 위주 식생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채식의 장점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됐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채식과 건강에 관한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최근 ‘유전자 건강학’을 내세워 다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는 이씨는 “그땐 내 주장이 너무 앞선 얘기였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나 자신이 27년째 채식주의자로 지내면서 채식만으로도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크게 늘어난 국내 채식주의자들도 “인간은 원래 채식 동물”이라며 “일부 종교인들의 평균 수명이 높은 것도 그들의 채식 관습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05년 11월호에서 제7일안식교인들의 집성촌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마린다란 마을을 일본의 오키나와섬,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섬과 함께 장수촌으로 꼽으며, 이들의 채식 관습과 술·담배를 멀리하는 절제된 생활이 주요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여전히 “건강을 위해서라면 채식만 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한다. 동물성과 식물성 식품을 골고루 먹되 상대적으로 채식의 비율을 늘리라는 것이다. 임경숙(식품영양학)수원대 교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동물성 식품을 과다하게 섭취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채식주의자라 해도 어떻게 채식을 하느냐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안윤옥(예방의학교실·대한암협회 회장) 서울대 의대 교수도 “요즘 채식을 권하는 것은 무엇보다 육류의 과다 섭취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육류 섭취량은 85년 38.9g에서 95년 67g, 2005년 95.1g으로 급증했다. 안 회장은 이 같은 서구식 식생활 패턴에 따라 당뇨·고혈압·동맥경화 등 비만과 관련된 각종 현대 질병이 크게 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동물성 단백질을 하루에 95g 이상 섭취할 경우 몸에서 칼슘을 빠져나가게 해 골다공증 위험이 높아진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며 “과다한 육류 섭취는 특히 대장암과 유방암의 발병 위험을 2배 이상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세계암연구재단 등이 발간한 ‘암예방을 위한 식사 지침서’에서도 육류를 일주일에 500g 이상 먹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반면 채식은 저열량·저염도인 데다 항암효과가 있는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그러나 식물성 식품이라 하더라도 고구마·감자 등의 전분류와 당류는 고열량이어서 역시 과다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식물성 식품에는 함량이 매우 적거나 흡수율이 낮은 성분들도 있기 때문에 채식만 할 경우 일부 영양소의 결핍이 생길 수 있다”며 “이를테면 회복기 환자에겐 열량이 높고 필수아미노산들이 골고루 농축돼 있는 육류 섭취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동이나 노인이 채식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부정적이다. 칼슘이나 철분·아연 등이 많이 필요한 성장기에 식물성 식품만 먹일 경우 발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품에 함유되는 철분의 형태는 두 종류인데, 육류에 많은 철분류(헴철)는 15~40%의 흡수율을 보이는 반면 식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철분류의 흡수율은 1~15%에 불과하다. 게다가 통곡식이나 콩·견과류에는 철분이나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인 피친산이 많다. 따라서 육류를 너무 많이 섭취하는 건 좋지 않지만 식물성 식품과 함께 적당량 섞어 먹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제7일안식교 계열인 삼육재단의 경우 전국 수백 개에 이르는 재단 산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채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영양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송숙자(식품영양학) 삼육대 교수는 “대부분의 재단 산하 학교에서는 우유나 달걀도 급식에 이용하고 있지 않다”며 “그렇지만 일반 급식을 먹는 아이들에 비해 체격의 차이는 약간 있을지 몰라도 다른 발육 문제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오히려 육식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공격적인 성향을 갖기 쉽고 성장이 빨라져 성인병이 일찍부터 생기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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