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시인의 고구마, 회장의 고구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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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는 어떤 시인 내외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시인의 아내가 아침상을 기다리는 남편 앞에 삶은 고구마 몇 개를 내놓는다. “햇고구마가 하도 맛있다기에 좀 사왔다”면서. 남편은 마지못해 두 개 집어먹고 “아침밥을 달라”고 재촉한다. 아내가 비로소 “이 고구마가 우리 아침밥”이라며 쌀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남편은 무안하고 미안해 화를 낸다….

직장 선배 한 분이 또 다른 고구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업체 오너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회장이 하는 말이 “나는 아침식사로 찐 고구마 두 개를 먹습니다”라더란다. 그것도 영양가를 고려해 껍질째 먹는다는 것이다. 선배는 속으로 “그 많은 돈을 벌어 겨우 고구마 아침식사라니”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똑같은 고구마지만 시인의 고구마와 회장의 고구마는 천지 차이다. 앞의 것은 구황(救荒)식품이고 뒤의 것은 영양식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엔 흔전만전이던 먹거리들이 어느 결엔가 ‘웰빙 식품’이란 이름으로 귀하게 대접받고 있다. 지금쯤은 텃밭에 오이·상추·쑥갓·부추 따위가 알맞게 자라있을 때다. 어린 시절,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으면 오이 두어 개 뚝 따서 대충 씻어 고추장에 찍어먹었다. 무나 칡뿌리가 아이들의 좋은 간식거리이던 시절이었다. 쌀이 귀해 쉰밥도 버리지 못하고 찬물에 헹궈 먹지 않았던가. 아카시아꽃·찔레순 따먹고 산딸기는 물론 맛이 처지는 뱀딸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좀 더 힘들여 산속 깊이 들어가면 머루·다래도 맛볼 수 있었다. 그런 내게 중학생 시절 처음 먹어본 온실 양딸기의 크기와 맛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다들 단것에 굶주려 있어서 어쩌다 얻은 왕사탕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아 속절없이 작아지면 안타까움에 가슴도 따라 졸아들었다. 어느 땐가는 라면이라는 ‘기적의 식품’이 출현했다. 아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집은 라면을 박스째 사놓고 먹는 집이었다.

엥겔계수는 가계지출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먹고살기 힘들 때는 중요한 지표였지만 지금은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60년대의 엥겔계수를 찾아보았다(식료품비에서 술값과 외식비는 빼고 계산한 수치다). 68년도 엥겔계수는 46.9%. 이후 78년까지 43~47%를 오르내리다 79년(39.7%)에 처음으로 40% 선이 깨진다. 다시 30% 선을 깬 것은 88년(29.5%)이었다. 95년에 19.5%를 기록한 뒤에는 줄곧 10%대를 맴돌고 있다. 재작년에 13.5%, 작년엔 13.0%다.

엥겔계수는 46%에서 13%로 엄청나게 줄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가 찾는 먹거리는 한 바퀴를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전에는 달리 먹을 게 없어 먹었지만 지금은 친환경·웰빙이라서 먹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고구마에서 출발해 돌고돌아 다시 고구마로 돌아온 것이다. 요즘 대형서점에 가보라. 쇠고기 파동의 영향으로 ‘식탁 안전’을 부르짖는 책들이 눈에 띄게 진열돼 있다. 나도 최근에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같은 책을 사 보았다. 결론은? 패스트푸드나 공장에서 만든 식품은 되도록 안 먹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쇠고기 파동의 중요한 교훈이자 성과는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이다. 한번 높아진 입맛은 좀처럼 낮출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이미 ‘식탁 공포’를 느낀 주부들이 비싼 친환경 식품을 찾는 탓에 엥겔계수가 다시 오를지 모른다는 보도도 있었다(본지 25일자 1면, 일부 지역 배달판 제외). 게다가 국내 친환경 농산물은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것이다. 좋은 식품을 전 국민에게 골고루 먹이려면 외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와야 한다. 그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공짜 점심은 없다더니 촛불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르나 보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