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서울을만들자>4.헬기운항 왜 안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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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94년 10월21일 오전7시50분.김포공항에 있는 경찰청항공대 운항반 상황실의 무전기가 숨가쁘게 울려댔다.『성수대교 붕괴사고 발생,긴급출동하라.』 5분이 채 못돼 구조요원을 태운 헬기가 이륙했다.
그러나 한강현장으로 직접 날지 못하고 「수도권시계비행로」를 따라 관악산을 끼고 돌아 15분만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직선 항로보다 5분여 더 걸렸다.
한강과 강북지역의 대부분이 비행금지공역(P-73)으로 묶여있어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관계자는 『분초를 다투는 긴급구조활동에서 5분이면 10여명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념(陳稔)노동부장관은 지난해 9월29일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대통령초청 청와대 만찬에 30여분이나 늦는 결례를 범했다. 대통령과 일부 국무위원이 참석 대상인 이날 만찬예정시간은 오후 6시30분.
그러나 오후5시쯤 승용차편으로 과천 2청사를 출발한 陳장관은상습정체구역인 남태령과 이수교로터리를 가까스로 통과했으나 남산3호터널속에 이르러 완전히 갇힌 상태가 되고 말았다.터널속에서30여분간을 허비한 陳장관의 승용차는 비상등 을 켜고 중앙선을침범해가며 불법U턴까지 하는 곡예를 벌였는데도 오후7시를 넘겨서야 청와대에 도착했다.
이날 다른 장관들도 비슷한 해프닝을 겪었다고 한다.과천 2청사에서 광화문1청사나 청와대로 가는 코스는 「운좋으면 1시간,운나쁘면 2시간」인 「마(魔)의 구간」이기 때문이다.
모부처 차관은 『총리실등 강북에서 회의가 있거나 국회에 출석해야 하는 날은 아예 목적지로 곧바로 출근하며 시간이 남으면 사우나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뒤 회의에 참석한다』며 『솔직히 말해 회의가 있는 날은 아예 하루 일과를 포기하다 시피한다』고털어놓았다.
중환자의 긴급수송,해외비즈니스를 앞둔 기업인의 급한 공항행…. 서울에 살면서「긴급」이 필요한 경우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서울에는 긴급수송수단이 없다.
사소한 접촉사고에도 교통대란이 벌어지는 육상교통에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그래서 나온 외침이 있다.
『서울하늘에 헬기를 날게 하자.』 그러나 서울의 하늘에는 수도권비행금지공역이라는 규제의 성역이 엄존하고 있다.64년 설정된 수도권비행금지공역은 적기 또는 적대행위 항공기로부터 국가주요기관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4.5해리(8.
3㎞)공역상의 항공기 비행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따라 기업은 물론 건설교통부.경찰청.행정쇄신위원회등에서 비행금지공역의 제한적 완화를 청와대경호실.국방부등 당국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국가보안」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93년7월 한강남단의 시계비행을 허용하는데 그쳤다.
그러다보니 강북지역과 한강의 대부분,여의도 일부등 도심 하늘은 「이용불가」 공간이 되고 있다.
서울의 유일한 헬기장인 잠실공용헬기장에 내려도 도심 진입까지1시간이상 소모해야 하는 실정이다.헬기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다.그러나 청와대경호실과 국방부는 수도권 비행금지공역을 더이상 완화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처럼 큰 도시의 하늘을 무제한으로 비행금지시키고 있는 수도는 평양.모스크바.베이징(北京)등 일부 공산권 국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미국 워싱턴의 경우는 백악관 주변 2×5㎞ 구역만을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일본 도쿄 역시 왕궁 을 중심으로한 반경 1해리(1.852㎞)밖에서의 민간헬기 운항이 제한없이허용되고 있다.
이제는 서울하늘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해 육상의 동맥경화를 해소하는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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