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D-9] "터뜨리고 보자" 폭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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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선거구에 출마한 여성 후보가 5일 명성황후 복장을 한 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선거 때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던 폭로전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총선을 열흘 앞둔 5일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을,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겨냥해 각각 창당 자금과 중앙당 지원금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물고 물리는 폭로전이다.

민주당 박준영 선대본부장은 "열린우리당 창당 자금 및 총선 자금과 관련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관계자가 검은돈 수백억원을 조성하는 데 관련됐다"고 주장했다. 朴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고문 변호사를 맡았던 U병원과 A창업투자회사가 검은돈 조성에 관련됐으며 여러 명의 열린우리당 핵심 관계자도 연루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장남의 호화 유학 의혹도 제기했다. 선대위는 "鄭의장의 장남이 2001년 미국 보스턴의 명문 사립고인 브룩스 스쿨로 유학을 떠났다"며 "학비를 포함, 연간 7000만~8000만원에 달하는 유학 비용의 출처와 배경을 밝혀라"고 요구했다.

열린우리당의 포문은 한나라당을 향했다. 신기남 선거대책본부장은 "경기 남양주갑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가 지난달 31일 선관위 홈페이지에 중앙당 지원금 7500만원을 공개했고, 같은 날 다른 후보들에게도 중앙당 지원금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지급됐다"며 "국고 보조금은 4월 2일 지급됐는데 그 전에 어디서 그 많은 돈을 마련해 은닉했는지 밝혀라"고 촉구했다.

辛본부장은 "박근혜 선대위원장이 천막 당사로 옮기느니, 당사를 매각하느니 했던 것이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쇼였느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이 터뜨린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물증이나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무책임한 폭로가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준영 본부장은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들이 있지만 소스(출처)를 밝히기는 어렵다"며 "열린우리당이 고백하는 것을 보고 (증거를) 공개하겠다"고만 말했다.

이에 鄭의장 측은 "브룩스 스쿨은 1년 학비와 기숙사비를 포함해 3700만원 정도 드는 학교로 1년 교육비가 7000만~8000만원이나 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부풀리기"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鄭의장 측은 "鄭의장의 장남이 이 고교를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했고 현재는 스탠퍼드대 이공계열 1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앙당에서 지원받은 750만원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곧바로 선관위 사이트에서 정정했다"는 한나라당 해당 후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다른 후보 수십명도 자산 5000만원 등을 일제히 등록했다. 확인하면 (중앙당 지원금이) 더 늘어날 것"(최동규 상황실장)이라며 의혹을 부풀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추가로 내놓은 증거는 없었다.

선거전이 치열해질수록 무분별한 폭로전은 기승을 부린다. 일단 선거 판세나 여론의 흐름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려보려는 얄팍한 계산이 무차별 폭로전을 부른다.

탄핵 역풍으로 인한 지지도 급락으로 존폐의 위기에 서 있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부패 대 반(反)부패' 대결로 몰아가려 한다. '차떼기' 정당으로 낙인 찍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똑같은 부패 집단으로 옭아매려는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탄핵 논란을 비켜가면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연어처럼 다시 모천(母川)으로 회귀할 것"(장성민 총선기획단장)이란 계산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른바 '박근혜 효과'가 가시화되는 데 당혹했다. 탄핵 역풍이 점차 옅어지는 데다 鄭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 겹쳐 영남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박근혜 바람 잠재우기 쪽으로 과녁을 옮기고 있다.

이에 대해 朴대표는 "이렇게 흑색선전에 열을 올리는 것은 17대에서도 국민이 지긋지긋해 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예고편"이라고 힐난했다.

이정민.신용호 기자<jmle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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