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진입 막으면 소비자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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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방송·통신 등 미디어 간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세계 각국은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영국의 커뮤니케이션 위원회(OFCOM) 같은 통합 규제 기구가 탄생하고, 매체별로 나뉘어 있던 법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와 관련, 비비안 레딩(사진) 유럽연합(EU) 정보사회미디어 위원장은 17일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추진 중인 유럽 방송·통신 정책의 핵심은 ‘열린 시장’(open market)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자를 등장시켜 시장 경쟁을 촉진한다는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17~18일 서울에서 열린 ‘OECD 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EU는 오래전부터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규제 기준을 만들어 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규제 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레딩 위원장은 EU의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으며, 한국과 비교하자면 ‘유럽의 방송통신위원장’이라 할 수 있다.

-방송과 통신의 규제 수위를 맞추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EU는 2004년부터 방송과 통신, 기타 미디어의 규제를 단일 기준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디어 간 융합은 계속 진전되는데 정책이 따로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일부 사업자의 반발도 존재하지만, 규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건 분명한 원칙이다. 모바일 방송을 예로 들면 EU는 이미 단일 기술표준(DVB-H)을 도입하고 실질적인 융합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방송·통신 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열린 시장’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다. 시장에서의 경쟁 수위를 높여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미디어 산업에서 경쟁이 중요한 이유는.

“유럽에선 예전부터 신문·방송·통신 시장에서의 경쟁이 활발했다. 융합 시대에도 이런 구도를 유지하고 더 발전시켜야 한다.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들어와 경쟁하게 해야 한다. 일례로 (자본 규모가 큰) 통신시장의 경우 독과점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경쟁은 혁신을 이끌고 투자를 낳으며 소비자의 이익을 높인다. 닫힌 시장이 있다면 열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올 수 있고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이 올라간다.”

-주파수 배분의 원칙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주파수의 효용이 높아졌다. 하지만 누구에게 배분할까 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여기서도 ‘열린 시장’은 중요한 원칙이다. 기존 사업자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촉진하는 게 필요하다. 유럽의 경우는 주로 모바일을 강조하는 쪽으로 주파수 정책을 가져가고 있다.”

-신문 등 전통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디지털 시대에도 신문의 가치는 여전하리라고 본다. EU는 뉴미디어와 전통 미디어가 공존하는 길을 찾는 데도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 다만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게 큰 숙제다.”

-부정확한 정보의 대량 유통 등 인터넷의 문제점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빛과 어둠은 함께 존재했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 나가야지 매체 접촉을 막는 건 능사가 아니다. EU의 경우 부모와 자녀들에 대한 미디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U와 한국의 미디어 산업 교류에 관한 생각은.

“유럽에선 매년 800편 이상의 영화가 만들어진다. 한국도 영화나 게임 등에 있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유럽과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영상물 분야에서 ‘윈-윈’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글=이상복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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