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유종호 교수.김병익'문학과지성'대표-96문학의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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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96년 「문학의 해」가 개막됐다.문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교양과 감수성을 키워주는 교사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아왔다.그러나영상과 컴퓨터의 시대를 맞아 문화의 중심으로서 문학의 지위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 다.「문학의 해」기념토론으로 평론가 유종호(柳宗鎬.이화여대 영문과)교수와 김병익(金炳翼)「문학과 지성」대표가 영상시대 문학의 위상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편집자註] ▶유종호=영상매체가 문화의 주류를 지배하면서 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유행입니다.과연 그럴까요.나는문학 본래의 기능은 계속 살아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병익=종래의 문학관에 비춰보면 실제로 위기가 있습니다.이데올로기와 거대 담론이 해체되면서 진정성의 문학이 타격을 입었고,컴퓨터 세대가 문화의 주축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문자 문학이 쇠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이런 경향 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이고요.
▶유=문학의 위기란 말은 서양에서 더 많이 나왔습니다.그 배경은 서구문화 우월주의,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인문주의」 등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1920년대에 영화가 등장했을 때 소설은 종말을 고할 것이란 관측 이 있었고 언론학자 맥루한도『구텐베르크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문학은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김=그러나 기존의 문학관과 새로운 문학관이 충돌하면서 문학의 어떤 부분이 쇠퇴하거나 변하는 것은 어쩔수 없겠습니다.민족문학.리얼리즘 문학의 쇠퇴,그리고 소설장르란 것이 종래와는 다른 형태로 제작.보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문화 전체의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본격문학이 인접 대중예술에 주도권을 넘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김=문학의 위기는 두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사회.문화적 비중이 약화되고 소설이 삶의 진정성을 담지않고 소비성의 문학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과거 어느 때보다도 문학작품의 양과 질,문인과 독자수는나아졌지만 문학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됐습니다.
그렇다고 문학이 인간 정신의 가장 기본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는 특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어느 시대에나 문학적인 욕망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며 영상예술도 그 내용에 있어서 문학적 구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다만 독자가 문자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매체로전환된 작품을 보게 되니까 문자 문학에만 집중해 왔던 기성의 눈에는 문학의 권위 상실로 보이는 것이지요.
또 문학은 시대정신이요,작가는 인간의 사표라는 존경심이 쇠퇴하고 군소작가.영화 드라마의 원작자로 돼가는데서 위기라는 말도나오는 거지요.
▶유=문학이 외로워지면 그만큼 문학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도 커져 오히려 문학이 풍성해질 수도 있습니다.
▶김=컴퓨터와 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은 소설이나 시에서의 묘사력을 견디지 못하고 쉽고 가볍게 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작가 스스로도 변해가지요.자연이나 인간의 성품과 운명 같은데서 촉발된 상상력이 아니라 도시의 우발적인 것,만화적.비디오적인 것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이런 것이 과연 인간의 본질에 관한 얘기며 진정성이 어린 작품인지 회의하게 됩니다 .앞으로 추리소설.SF.비디오 게임형 모험소설 같은 것이 점점 더 주류를형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래의 문학관.작가관은 근본적 변화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우울하게 내다보게 됩니다.
▶유=어려서부터 영상에 의해 감수성을 키워온 세대가 컸을 때독자의 취향도 크게 변하겠지요.
▶김=20세기 중반까지 문학독자는 거의 전부 지식층이었지만 이제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중 소수만이 순수문학작품을 읽습니다.앞으로 독자는 고급화된 소수와 대중적인 다수로 양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중작가가 사회적 대우를 많이 받게 되고 힘들여 쓴 본격문학작가는 소외되겠지요.선진외국에서는 독자가 많든 적든 문학의 위계질서를 인정해주고 좋은 작품에 대한 존경심은 유지됩니다.또 대학이나 재단에서 실험적 작가를 지원해 출판비용 뿐 아니라 때로는 생활비도 지원하지요.우리나라는 이런 존경심도 지원체제도 없습니다.
▶유=그러나 문학의 중요성은 영상시대에도 여전히 바래지 않고남아있습니다.우리 인격 형성기의 경험을 봅시다.좋은 문학에 충격도 감동도 받고 인생에 대한 긍정적 생각도 하게되고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고 교화되었던 것 아 닙니까.소설을읽지 않았다면 사람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문학을 인간교육의 기본으로 대접하는 것은 다 그만한 근거가 있어서입니다.
▶김=문학은 삶이나 세계에 대한 이해력과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논리적.정서적으로 키워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학도 외국처럼 대중적이고 가벼운 흥밋거리 위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장래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유=사람들에게 문학이 훌륭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기회가 많아야겠습니다.그 가장 큰 책임은 교육기관과 언론에 있습니다.
▶김=학교의 문학 교육을 입시위주가 아니라 삶의 내면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방향으로 쇄신해야 합니다.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문학을 제대로 대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재단.기업.대학에서 좋은 작가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뒷받침을 해줘야 합니다.사회 전반으로 봐서 작가나 작품에 대한존경심을 어디선가 선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유=문학내부의 훼손행위도 막아야 합니다.졸속의 다작,우리말의 훼손과 오염 등도 견제해야 할 것입니다.이것은 비평가들의 책임인데 준엄한 비판이 부족한 것이 요즘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업체들이 스포츠에 들이는 노력의 일부분만이라도 문화나 문학쪽에 투자했으면 합니다.
▶유=좋은 문학서적을 많이 사서 기부하는 등의 사업도 좋을 것입니다.
▶김=문학은 개인의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에 문학의 해 사업이얼마나 효과를 낼지에 대해선 회의가 생깁니다.그러나 문학비라든가 어느 작가가 여기서 살았다는 내용의 표지 붙이기 등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존경심을 키운다는 점에서 의미있 으리라 봅니다. [정리=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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