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전자산업 '맞수기업' 엇갈린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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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세기말 이후 독일의 전자산업을 대표해 온 지멘스와 AEG가 최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멘스가 확트인 초고속 성장의 길을 질주하고 있다면 AEG는머지않아 간판마저 내려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접어든 것이다.
지멘스는 95 회계연도에 순이익이 전년에 비해 26%나 늘어난 21억여 마르크를 기록했다.이 회사는 내년에도 25%정도의순익증가를 기대하고 있어 1847년 창업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현재 부문별로 정리절차를 밟고 있는 AEG는 올해에도 13억마르크의 적자수렁에 빠져 있다.85년 파산직전에 다임러 벤츠그룹으로 넘어간 AEG는 그동안 기사회생을 위해 몸부림쳐 왔다.그러나 최근 적자가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최근 다임러측은 AEG해체를 결정해 내년초 113년간 이어온 이 회사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됐다.
한때 자웅(雌雄)을 겨루던 업계의 두 거목이 이처럼 극과 극의 처지로 갈라서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AEG의 몰락 이유를 크게 두 가지요인에서 찾고 있다.그 한 요인은 자금동원능력의 부족이고 또 다른 요 인은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에 있다는 것이다.
AEG는 지멘스와는 달리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아 장래성있는 사업에 신속히 뛰어들지 못했다.예를 들어 이 회사는 1903년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고속철도차량 제작기술을 확보하고서도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계획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경영진의 연이은 판단실수도 회사의 수명단축을 재촉하는큰 원인이 됐다.AEG는 50년대 대용량 컴퓨터 및 핵에너지사업을 주력업종으로 선택했다.그러나 연이은 핵발전소사고와 컴퓨터의 판매부진은 회사의 재정악화를 부채질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게다가 79년부터 90년대초까지 10년 넘게 계속된 리스트럭처링은 기업을 소생시키기보다는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능률만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초래했다.결과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는 얘기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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