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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기행 ③ - 청령포

중앙일보

입력

그곳에 가면 소나무 비가 내린다

영월까지 방문해서 청령포를 빠뜨리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를 슬쩍 훑어보고 바로 동강으로 달려가 래프팅을 하는 것으로 영월 여행을 마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없다.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청령포는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강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섬이기 때문이다. 섬을 찾아 나루터 까지 간다고 해도 그 속을 제대로 감상하고 돌아 나오는 이는 별로 없다. 그것은 그 슬픈 섬의 가장 큰 매력이 푸른 소나무 숲에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울창하다 못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청령포의 소나무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특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하라. 청령포의 매력은 섬을 둘러싸고 있는 옥빛 강물이나 기암괴석이 아닌 소나무에 있음을….

청령포는 역사상 가장 한 맺힌 삶을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조선의 왕 단종의 슬픈 둥지였다. 하늘에서 보면 정말로 소나무로 만든 둥지처럼 생겼다. 왕의 둥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루터에서 배를 타야 한다. 나루터에서 섬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배를 타고 5분이면 닿을 거리니 짧은 항해가 오히려 번거롭다. 그러나 배 안에 앉아 허리 높이로 출렁이는 옥빛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깊은 곳에서 탄식을 뱉게 된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은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배에서 내리면 인상적인 자갈밭이 펼쳐져 있다. 단종이 강가로 산책을 나올 때 마다 밟았을 자갈들이다. 바닷가의 마른 자갈은 하얗지만 이 사연 많은 강가의 자갈들은 물이 닿지 않은 곳에 있는 것들도 까맣게 반질거린다. 다행히, 돌들이 그리 잘생기진 않아서 도둑맞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자갈밭을 걷는 시간은 물길을 건너온 시간보다 조금 더 걸린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소나무 숲으로 진입해 단종이 살았던 어가로 향하게 된다.

어가의 규모나 형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 수양대군의 심보(?)를 감안하자면 그런대로 융숭한 편이다. 커다란 마루가 돋보이는 건물은 왕이 머물던 안채이고 부엌과 시녀들 방이 여럿 딸린 건물은 별채다. 귀양살이를 해도 왕족은 옷을 단정히 다려입었던 모양인지 시녀들 방 가운데 다림질만 하는 방도 보인다. 오 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어가와 별채. 청령포 안에 들어 있는 단종의 흔적은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 어가 밖으로 나와 다시 소나무 숲을 서성이는 수밖에 없다.

날이 아무리 맑아도 이 소나무 숲은 어딘지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숲 경영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데에는 주변의 수려한 경치들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섬의 동쪽과 남쪽, 북쪽 이 세 방향으로 모두 강물이 흐르고 있다. 깊은 강 속의 작은 섬은 어딘지 신비로운 분위기다. 하지만 비취색으로 빛나는 이 강줄기들은 단종의 발을 묶는 족쇄였다.
왕을 섬에 가두고 삼면을 깊은 강으로 둘러놓았으니 청령포는 그야말로 천혜의 유형지였다. 유일하게 서쪽으로만 강이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왕은 서쪽으로도 걸어갈 수 없었다. 그쪽으로는 아찔한 암벽이 솟아 있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어린 왕은 청령포를 두고 ‘이처럼 슬픈 섬은 다시없을 것이다’라며 섬의 고독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홍수가 나서 섬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소나무 숲을 맴도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왕이 맴돌았던 숲을 걷다 보면 산책길 중앙에 두 갈래로 갈라진 600년 수령의 소나무가 보인다. 단종의 유배 모습을 지켜보며 이 나무는 구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관음송(觀音松)’이다. 이 인정 많은 나무가 단종의 유일한 친구였다. 단종처럼 관음송 앞에 주저앉아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숲 속은 아직도 슬픔을 머금고 있는 느낌이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가녀리고 기다란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빨갛고 노란 이름 모를 꽃들이 음침한 땅을 애써 밝히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바람의 방향대로 시선을 번갈아 가며 숲을 뜯어보니 소나무는 제 각기 몸을 휘거나 가지를 뻗으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어떤 나무는 하늘로 곧장 솟아 있고 또 어떤 나무는 어가의 담벼락에 기대어 있거나 아예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 있다. 그리고 어떤 나무는 꽈배기처럼 뒤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단종이 날마다 봤던 풍경도 이러했을까. 좀 더 굵어지고 길어졌겠지만 키가 큰 대부분의 나무들은 당시에도 그 자리에 있었을 터 그렇다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 풍경이 단종이 날마다 감상했던 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왕이 울고 관음송도 울고 수 백 수 천 그루의 소나무가 함께 울었을 슬픈 숲. 그 숲 가운데 서서 아직도 비처럼 쏟아지듯 서 있는 단종의 소나무를 감상하다 어가를 한번 바라보고 나온다면 청령포와 어린 왕에게 조금이나가 위로가 되지 않을까.

단종이 죽은 후 청령포는 한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왕이 실제로 머물렀던 장소는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 세워져 있는 어소는 승정원일지에 따라 재현해 놓은 것이다. 어소의 입구에는 단종의 시를 만날 수 있는데 단종은 이 시를 쓰고 몇 달 뒤 수양대군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한다.

어제가 御製詩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물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사진 - 이한얼

객원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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