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미쳐버리고 싶은,미쳐지지 않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욕망에는 욕망의 잡음들이 들끓고 욕망의 잡음은 욕망보다 더 크다.욕망은 그냥 불타오르는 욕망이 아니다.그것은 시끄러운 말의 불덩어리고,말의 급류고,말의 천둥번개다.말이 있는 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욕망으로부터의 해탈을 말하는 그 모든 말들도 해탈에의 욕망을 재촉한다.불경의 말씀도 그것이 말인 한은 욕망과의 싸움이지 해탈이 아니다.
그러니 또한 욕망과 잘 싸우기 위해서는 말을 통하지 않을 수없다.욕망과의 싸움은 욕망과의 대화다.이인성의 『미쳐버리고 싶은,미쳐지지 않는』에선 전화선이 그 싸움터다.왜 전화인가.아주먼 통화,따라서 욕망의 직접성으로부터 가장 멀 리 비켜있을 수있기 때문일까.하지만 그렇다고 해 욕망이 어디로 가나.오히려 전화선은 욕망의 조바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수화기를 든 손을 시커멓게 태워버린다.작가가 전화선을 택한 것은 욕망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멀리 있을수록 욕망은 더욱 뜨겁게 타오름을 겪기 위해서다.가장 우회하는 길이 가장 구체적으로 살아보는 길인 법이다.그가 제시한 명제,「욕망을 비켜 가기」는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그렇게 욕망의 조바심으로 타버린 한 인물이 있다.작가는 그를「너」「나」「그」로 한꺼번에 지칭한다.모든 세상 존재의 총칭으로,3개의 기본 지칭대로,다시 말해 작가는 욕망의 전 통신망을,즉 욕망의 인터네트를 문제삼는다.욕망의 샘,욕 망의 순환로,욕망의 종착지는 어디인가.또한 너는 의식된 나이고,나는 사는 나이며,그는 상상된 나다.너는 나의 과거이고,나는 나의 현재며,그는 나의 미래다.「너」「나」「그」는 세개의 기본 시간대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욕망의 역사,그 자체를 문제삼는다.욕망에는변화가 있을 수 있는가.
너는 미친 여자의 전화에 시달린다.미친 여자의 전화때문에 직장까지 잃은 나는 첫사랑의 여자에게 전화질을 해댄다.욕망은 항상 전염되고 항상 되풀이된다.너는 나다.그 욕망의 되풀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는 다른 길을 떠날 것이나,그도 어느 곳에서술집의 여자에게 전화할 것이다.그도 전화망의 우리에 갇혀 있을것이다.욕망에는 변화가 없다.욕망에는 심화만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심화의 끝은 폭발이고 파국이다.욕망의 끝은 소돔과 고모라다.우리가 욕망을 벗어날 수 없다 면 욕망을 살되 그것을 파국으로 달리게 해서는 안된다.욕망의 되풀이를 당하되 그것을 오래되풀이시켜 욕망의 「오감도」를 그려야 한다.「욕망을 비켜가기」는 소의 반추와 누에의 분비가 하나로 붙은 특이한 욕망과의 싸움 형식이다.끊임없는 욕망의 되새김으로 욕망의 실을 자아내 욕망의 형태를 짜는 것,그리하여 그것을 겪으면서 그것을 깨닫고 그것에 반하게 하는 것.그 길은 결코 끝나지 않는 한없이 긴 욕망의 행로다.
(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