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숲은 마음 치료하는 ‘녹색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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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각박하고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얻은 병을 치유하는 ‘병원’ 역할을 한다. 사진은 녹색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숲캠프에 참가한 학생들.

‘숲 병원’을 아십니까. 이곳엔 의사도 치료약도 없습니다. 하지만 ‘녹색 커튼’이 드리워진 이곳을 찾으면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쏟아지고, 면역력이 높아지며, 억압된 울증이 사라집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치유의 숲’이라고 합니다. 선진국에선 숲을 질병치료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건강 휴양림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숲 치유사를 양성합니다. 국내에서도 숲 치유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달라졌어요=심각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증상으로 골칫덩이였던 김모(초등 2학년)군. 제 마음대로 안 되면 울거나 소리 지르는 것은 물론 학우들을 괴롭혀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김군이 아버지와 함께 숲 치유 캠프에 참여한 것은 지난해 6월. 낯선 환경 때문에 울음을 그치질 않던 김군은 4회째부터 변하기 시작해 8회 프로그램이 마무리됐을 땐 부모가 놀랄 정도로 증상이 개선됐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도 크게 줄고, 학생들과 어울리거나 교사의 말을 수긍하기 시작한 것.

한양대병원 정신과 안동현 교수팀이 녹색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한 ADHD아동 15명에 대한 숲 치유 캠프(2007년 6월∼올 1월, 격주 실시)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아이들의 우울과 불안 수준은 30∼40% 감소했고, 자아존중감은 크게 향상됐다. 안 교수는 “공격성·충동성 등은 1차 약물치료 대상이지만 숲 체험으로도 효과가 있었다”며 “사회심리 치료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충북대 산림학과 신원섭 교수는 성인 남녀 12명에게 숲체험을 시키고 뇌파와 맥박·혈압과 심리적 변화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안정기에서 나타나는 알파파 발생이 10.12에서 22.41로 높아졌고, 혈압은 평균 132㎜Hg에서 121㎜Hg로 크게 낮아졌다. 녹색문화재단 장명국 이사장은 “숲은 정서적 치유뿐만 아니라 긍정적 행동을 유도해 비행청소년, 학대 노인, 인터넷중독 청소년, 가족관계 개선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말했다.

◇숲의 건강효과=숲 속에 앉아 주변 경관을 바라보거나 걷는 것만으로도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가 낮아지고, 면역세포의 일종인 NK(자연살해)세포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심리적으로는 오감의 능력이 회복되고, 성취감과 모험심이 길러지기도 한다. 각종 업무 스트레스와 소음·오염으로 상처받은 심신이 자생력을 갖는 것이다.

숲의 치유인자는 크게 피톤치드와 간접광·음이온·산소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휘발성 물질로 인체의 면역성을 높여주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도와준다.

간접광은 식물이 직사광선을 흡수한 뒤 유해한 자외선을 걸러 내보내는 빛. 비타민D를 합성하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한다.

숲 환경에선 음이온 농도가 높다. 인체가 음이온에 노출되면 도파민 농도가 낮아져 뇌가 편안함을 느끼고 휴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연구에 따르면 운동 후 음이온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휴식을 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혈압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숲에는 도시보다 산소 함유량이 1∼2% 높다. 게다가 공기 1㎥당 먼지 숫자도 도시가 10만 개인 반면 숲은 500~2000개에 불과하다. 숲의 청정산소는 체내 산소부족을 해소하고, 피부 호흡을 통해 피로 해소·암 예방·두뇌활동 증진· 피부노화 방지에 기여한다.

◇숲의 치유효과를 높이려면=해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숲을 이용한 치료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 120년 전부터 숲 치유가 시작돼 400여 개의 숲 치유 마을이 조성돼 있고, 이곳을 이용한 사람에겐 건강보험 혜택도 준다.

일본은 삼림욕의 생리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2004년부터 국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포레스트 테라피 로드(치료를 위한 숲길)과 휴양림 인증제도를 실시, 2006년 현재 28개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선 녹색문화재단이 숲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숲 치유 프로그램과 교육에 참여한 인원은 2만6000여 명. 숲 치유 안내인 양성과 국내 최초로 강원도 횡성에 숲체원 치유센터(www.soop21.kr)도 마련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숲을 찾는 것만으로도 건강효과가 있다. 단 기본적인 수칙만 지켜주면 된다. 마실 물을 준비하고, 무리하게 산행하지 말며, 침묵하라는 것.

충북대 산림학과 신원섭 교수는 “숲은 빨리 걷거나 달리기같이 운동을 하는 장소가 아니다”며 “숲과 함께 동화하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며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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