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덜고 나누는 세상 부활은 헌신하는 삶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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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도웅(左) 목사와 홍창진 신부는 어려운 사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부활절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를 외치며 십자가에서 죽어갔던 예수가 사흘 만에 되살아난 '사건'을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독교 최대 축일인 부활절(4월 11일)을 앞두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백도웅(61)총무와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위원회 홍창진(44)총무가 '지금, 여기'에서의 부활에 대해 얘기했다. 그들은 목사와 신부라는 '옷'과 상관없이 지난 4년 동안 종교간 평화와 대화를 위해 협력해온 사이다.

▶백목사=올 부활절은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겠죠. 이념.빈부.세대 등으로 갈린 한국 사회가 희망을 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흔히 부활절 하면 다시 살아난 '영광'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부활 이전의 '고난'을 주목해야 합니다.

▶홍신부=무엇으로부터의 부활인가가 중요합니다. 부활의 핵심은 불의로부터 정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에 눈먼 이 사회에 사랑을 심는 거죠. 탄핵.총선 정국으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마저 정치인을 비판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깨끗한 성인으로 커갈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부활절은 자신의 도덕성부터 돌아보는 시기입니다.

▶백목사=2000년 전 예수는 생명의 존귀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눈을 감았으나 종국에는 생명의 길을 제시했어요. 자신을 낮춰 사회에서 버림받은 약자를 격려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희망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그게 참된 해방입니다. 우리 같은 종교인의 책무를 분명하게 밝혔어요.

▶홍신부=예수는 동족 유대인에게 '좌파'로 비쳤을지도 모릅니다. 세리(稅吏).창녀 등 낮은 자와 어울렸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엔 죽음마저 극복했어요. 사람들은 대개 목숨 앞에서 '깨갱'하며 물러서잖아요. 신앙은 그 힘을 믿는 겁니다.

대화의 초점은 한국의 오늘과 종교의 역할로 옮겨갔다. 교회마저 세속의 가치에 물들고, 많은 이가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요즘, 남을 배려한다는 종교가 설 땅이 얼마나 될지를 고민했다. 부활의 현재성을 따져본 것이다. 백목사가 "총선을 앞두고 기독교 정당이 출범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스님들의 지적에 최근 얼굴이 뜨거웠다"고 하자 홍신부는 "다 아실 만한 분들이 그냥 넘어가시지, 목사님을 무안하게 했군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백목사=부활의 뜻은 거리를 없애는 데 있습니다. 저와 홍신부가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죠. 예수는 본인을 낮춰 우리 인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며 차이를 두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벼 화(禾)와 입 구(口)가 모인 화할 화(和)처럼 모두 둘러앉아 조화를 이루는 식탁의 공동체를 실현했습니다.

▶홍신부=그게 사랑이겠죠. 예수는 저희가 인터뷰하는 바로 이 자리에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그걸 발견하지 못할 뿐이죠. 사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사도들도 부활한 예수를 몰라보지 않았습니까. 예수가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교회.성당에서 먼저 '왕따'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건물이 크고 깨끗해 역 앞의 군밤장수가 마음 편하게 들어오기 어렵잖아요.

▶백목사=손녀가 발달장애아입니다. 몸집은 커지는데 아직도 말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어요. 약자를 돌봤던 예수의 숨결을 새롭게 느꼈습니다. 교회의 일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예수처럼 피를 흘릴 순 없어도 이웃을 위해 땀을 흘리는 모습은 보여줘야 해요.

▶홍신부=교우들과 제 자신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과연 오늘 '부활의 삶'을 살았나 하고 반성합니다. 사실 부활은 어려운 게, 또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욕심을 덜고 나눔을 넓히는 거죠. 역사상의 성인이나 선각자는 이런 부활을 향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부활절의 정신을 폭넓게 해석했다. 기독교만의 축제가 아닌 이땅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사회를 위해 뭔가 헌신하려는 자세에 방점을 찍었다. 아이러니 하나. 목수가 직업인 예수는 다른 목수가 만든 십자가에서 처형됐다. 그렇다면 예수가 지금 한국에 태어난다면 어떤 직업을 가질까.

"예수는 뿌린 만큼 거두는 농심(農心)의 대변자입니다. 자연.환경 친화적 일을 하지 않을까요"(백목사), "당시 목수는 첨단 기술자였습니다. 오늘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쯤 될까요. 혹시 인터넷으로 망할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홍신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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