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빛을 열고 들어가 본 진짜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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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박상우 지음, 시작, 280쪽, 1만2000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행이 아니다. 일회성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행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빛을 보는 일’뿐이다. 관광(觀光)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빛을 보는 일이 아니라 빛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274쪽, 에필로그 중에서)

소설가 박상우(50)씨가 산문집을 냈다. 1999년 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저자는 “지난 10년 동안 가능한 조금 쓰고, 가능한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매진했다. 그래서 세상에 드러나는 대신 자연으로 스며들고, 무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분야도 공부를 통해 빛의 영역으로 바꾸었다”고 그간의 근황을 밝혔다.

저자는 이어 “그동안 거둔 결실이 꽤 많으니 이제 그것들을 세상 사람들과 나눌 때가 된 모양”이라고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살핀다. 이번 산문집은 저자의 문학인생 제3막(1막 데뷔~1999년, 2막 1999년~현재)을 시작하기에 앞선 ‘출사표’인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그곳’은 10곳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대관령 ▶양양 조산리 앞바다 ▶말무리반도 ▶청령포 ▶만항재 ▶김삿갓 계곡 ▶태안반도 ▶용유도 ▶자유로 등이다. 10곳 가운데 앞의 7곳은 동쪽바다(동해 또는 이에 근접한 강원지역)와, 뒤의 3곳은 서쪽바다와 각각 가깝다.

저자는 “동쪽바다는 글을 쓰기 전에 찾아가지만 서쪽바다는 글을 끝낸 뒤에 찾아가는 곳”(219쪽)이라고 말한다. 동쪽바다에서 얻은 것들은 이미 작품의 일부가 됐다는 뜻으로, 서쪽바다에서 만난 것은 앞으로 형상화 해나갈 부분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이 책은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돌려보듯한 느낌으로 읽힌다. 영화감독이 한 장면 한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보여주듯, 저자는 자신의 소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씌여졌는지 보여준다. 그의 중편소설 ‘말무리반도’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주요 배경이자 제목이기도 한 말무리반도가 저자와 어떻게 조우했는지. 저자의 안내를 따라 대관령을 넘고 조산리 앞바다를 건너 말무리반도로 가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에 실린 사진은 저자가 직접 찍었다. 그래서인지 글과 사진이 따로 놀면서 ‘나부터 봐달라’고 소리치는 많은 기행산문들과 달리 이 책은 둘이 조화롭다. 사진을 보면서도 글에 잘 몰입할 수 있는 점,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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