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태풍의 소리" 안정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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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5공화국 정권은 총체적 범죄집단입니다.』 『하얀전쟁』『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작가 안정효(安正孝.54)씨가 5공화국의암울했던 시대상을 샅샅이 해부한 장편소설 『태풍의 소리』(현암사.전6권)를 냈다.노태우(盧泰愚).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들의 구속과 12.12, 5.1 8등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열기 속에 출간된 이책은 비록 소설이라는 허구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라면상자 7개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상처투성이였던 우리 과거를 꼼꼼하게 짚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궁정동에 총성이 울렸던 79년 10.26 박정희(朴正熙)시해사건부터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5공 정권이 백기를 들었던 87년 6.29선언 바로 이틀전까지 약 8년동안.
신문기사.비디오.외국자료.관련자들의 증언등을 참고 ,소설적 보고서 형식을 취한다.6권 가운데 광주민주화운동에 2권을 할애하는등 80년대를 갈랐던 굵직한 사건의 발생일자,당시의 날씨등 관련사항도 철저하게 고증했다.5공 주역들의 이름도 모두 실명처리.이같은 객관적 사실 속에 신문사 사 회부장인 아버지와 철학과 2학년생인 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5공 수립후 아버지로 대표되는 언론에 환멸을 느끼고 광주항쟁에 참여하나 투옥과 고문을 겪는 아들.그는 출소후 5공인사 암살단을 구성하나 거사 직전 발각돼 짧은 삶을 마감한다.이어 아들의 죽음에 자극받은 아버지의 투쟁이 전개된다.편 집국장을 설득한 아버지는 사장이 없는 사이 편집국을 접수,일해재단과 5공청문회에서 드러난 각종 비리를 폭로하며 5공 정권과 일대 전면전을 벌인다.
그러나 그 또한 신문사를 포위한 군인들에 의해 죽음을 맞고 혼자 남은 어머니가 87년 민주화 쟁취 대열에 합류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아들의 암살단 구성과 아버지의 대(對)정부 투쟁은 지난 세월 단죄 못했던 우리의 슬픈 과거를 상징합니다.우리역사가 제대로 청산됐으면 하는 저 나름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까요.』安씨가 이 소설을 구상한 때는 6.29선언 두달여 전.그를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했던 『하얀 전쟁』영문판을 탈고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본 한 영자신문에 실린4.13 호헌조치 기사가 발단이 됐다.
『기사를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습니다.이 ×같은 나라에 다시 들어가야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지요.이때 5공시대를 소설로 정리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6.29선언으로 安씨는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90년부터 다시 소설에 매달린다.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평소 낚시다니며 눈여겨 두었던 전남 고흥군 득량만바닷가 빈집에서 5개월동안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원고지를 메워나갔다. 『처음엔 국내 발표는 꿈도 못꿔 영어로 썼습니다.만약의 경우에 대비,미국출판사와 암호까지 만들었지요.편지에 「연기가 난다」(It's smoking)는 구절이 나오면 저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였지요.』安씨는 이후 93년부터 한글로 다 시 옮겨 지난해 모일간지에 연재를 시작했으나 외부압력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수년전 완성했고 내년께 출간할 생각이었으나 정세 변화로 서둘러 책을 냈다』는 安씨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이 수감되면서도 전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최근의 행태는 제똥을 옆에두고도 내똥이 아니라고 우기며 국민을 또다시 우 롱하는 처사』라며 분개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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