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1시30분쯤 광주시 남구 진월동 광주대 본관(호심관) 입구에서 金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 강호영(63)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강씨는 "건물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이사장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金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광주대 본관 21층 이사장실로 출근, 비서가 준 차를 마신 뒤 30여분간 혼자 있다가 창문(52×115㎝)을 통해 투신했다. 그러나 집무실과 사망 당시 입었던 점퍼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광주대 관계자는 "최근 金이사장이 간부회의 때 '바깥 사돈(장녀의 시아버지)에 이어 절친한 친구(D건설 박모 회장)까지 숨지는 것을 보니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입생 모집 실적이 저조한 데다 직원노조 설립, 교직원 연구비 삭감 문제까지 겹쳐 이사장의 고민이 컸다"고 덧붙였다.
金씨는 1972년 광주 인성고와 광주경상전문대(2년제)를 설립했고, 전문대는 개방대를 거쳐 지난해 일반종합대인 광주대로 전환시켰다.
또 88년 13대 총선 때 자민련의 전신인 신민주공화당 전국구 1번으로 정계에 진출했으며, 14대와 15대 때는 영광-함평에서 민주당.국민회의 후보로 당선됐다. 97년 대선 때 DJP연합을 이끌어낸 막후 인물의 한사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영애(鄭永愛.69)씨와 광주대 총장인 김혁종(金革鍾.46)씨 등 2남1녀가 있다.
광주=구두훈.천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