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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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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방공단의 전봇대가 뽑히면서 정권이 제대로 출발하나 싶더니 취임 100여 일 만에 국가의 심장부에 컨테이너가 박혔다. 21년 전 6·10 항쟁 때 그 거리는 나라를 민주화로 이끌었는데 지금은 나라의 선진화를 막고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쌓인 컨테이너 벽은 2008년 한국 사회의 불신과 혼란의 벽이다. 어제 진보와 보수 세력이 각자 클라이맥스 집회를 가졌다. 쇠고기 사태 40일 만에 내각이 총사퇴했다. 대통령은 내각·청와대 개편을 포함한 국정 쇄신책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은 먼저 이번 사태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빨리 국민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가 제 위치로 가야 한다. 정권은 정상적인 당·정·청 국가운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조각(組閣)·공천 때처럼 실세 몇 명이 국정을 흔들어선 안 된다. 한나라당은 1차로 친박 세력 15명의 복당을 결정했다. 늦었지만 합쳐져야 할 게 합쳐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진솔한 자세로 박근혜 전 대표와 화해·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어제 자유선진당이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국회가 대의민주주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더라면 쇠고기 문제가 이런 혼란으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회는 법을 어겨가며 문을 닫고 있다. 대통령이 새 내각을 구성하려 해도 국회 문이 열려야 인사청문회를 열 수 있다. 유가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세금환급 정책도 국회가 열려야 법적 정비를 마칠 수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이제 거리에서 여의도로 옮겨야 한다.

집회를 주도한 재야·시민단체도 이젠 제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청와대 담장을 넘어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대통령은 바뀔 것이다. 시청 앞 광장에는 민주노총·전교조·공공서비스노조 등 여러 이익단체가 텐트를 쳤었다. 그 광장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이젠 광장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왔던 가장, 유모차를 밀었던 주부, 어려운 민생에 분노했던 서민·노동자, 쇠파이프로 경찰을 때렸던 시위대…. 광장과 도심을 메웠던 모든 시민도 이제는 가정과 학교·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계도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민주노총은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를 놓고 총파업 투표를 진행 중이다. 도대체 쇠고기와 민주노총이 무슨 관련 있는가. 그것이 노동자의 임금이나 복지 문제인가.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명분 없는 짓이다. 화물연대는 13일, 건설노조는 16일 파업을 단행할 것이라 한다. 버스업계도 단축운행을 고려하고 있다. 유가와 물가가 올라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 전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식의 물리력 행사는 경제계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다. 2003년의 물류대란을 기억하지 않는가. 제자리를 지키며 정부·업계와 차분히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나라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 광장으로 몰려나갈 것인가. 이제 마음을 합치자.

한·영 대역Time to calm down